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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실리콘 밸리의 밤은 ''탐욕'' 과 ''모략'' 이 지배한다 - .

첨단산업의 요람이자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기업문화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 밸리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함이 속속 드러나면서 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기술력이 우월한 상대 업체의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쓰레기를 뒤져 비밀 정보를 빼내고, 걸핏하면 소송을 제기해 발목을 잡는 등 치열한 경쟁이 빚어낸 부작용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라클은 지난달 탐정회사인 인베스티거티브 인터내셔널 그룹(IGI)을 고용해 친(親)마이크로소프트(MS)단체의 사무실에서 흘러나온 쓰레기를 입수하려 했다고 실토, 파문을 일으켰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은 MS에 대한 정보 수집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며 선량한 시민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 연방지법이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릴만큼 그동안 MS의 사업 관행이 부당했기 때문에 스파이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오라클은 오클랜드 독립협회.전미납세자연합 등 두 단체로부터도 MS 관련 자료를 입수하려고 했음을 실토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노트북 컴퓨터를 도난당했고, 컴퓨터에 저장된 MS관련 정보가 언론에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제잡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실리콘 밸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기회와 스톡옵션으로 가득찬 낙원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소개했다.

이 잡지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일인자가 돼야만 한다" 는 결과중시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오라클의 엘리슨 회장은 13년 동안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던 마크 베니오프가 최근 독립, 외판원들을 위한 웹 서비스 사업을 시작하자 2백만달러를 지원해 줬다.

베니오프도 엘리슨에 대한 보답으로 이사회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줬다. 그러나 얼마 뒤 베니오프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클이 똑같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친구가 경쟁상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베니오프는 "엘리슨이 전부터 원하던 사업이었다. 그를 이해한다" 고 말했지만 서운함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지난 5월 산타 클라라 카운티 법원은 네트워크용 반도체업체인 브로드컴이 인텔사에서 근무했던 엔지니어들을 채용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영업 비밀을 빼내려 한 사실이 있음을 확인했다.

브로드컴은 결국 시정조치로 경쟁사 직원을 채용할 때 해당 기업의 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채용 인터뷰 시스템을 새로 마련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독일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사는 지난해 가을 실리콘밸리의 경쟁사인 지벨 시스템스가 12명의 임원을 한꺼번에 빼가자 소송을 제기했다.

SAP사는 핵심 인력의 싹쓸이는 합리적인 스카우트의 테두리를 넘어선 비양심적인 처사이며, 이로 인해 경영에 큰 타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양사는 두달전 가까스로 합의를 봤지만 앙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뉴스위크지는 초대형 기업인 MS사도 1993년 소프트웨어 위조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쟁사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지저분한 행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실리콘 밸리 관계자들은 ''초(超)경쟁'' 과 더불어 신흥갑부들이 갑자기 늘어난 점도 비도덕적인 사업관행을 양산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실리콘 밸리에서는 월평균 5천여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피플소프트의 CEO인 크레이크 콘웨이는 "큰 돈을 단기간에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이성을 잃게 한다" 고 지적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조직행동학 교수인 제프리 페퍼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는 야망.탐욕.경쟁의 복합체" 라며 "스톡옵션.연봉 등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한편 ''게임의 룰'' 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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