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로를 인정하는 개인주의 절실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난데 없이 '개인주의'다. '개인 능력 보장' '자유로운 개인의 확대' 등 건강한 개인주의가 인터넷 벤처 시대에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는 이 즈음에 '일본 문화가 좋다'는 도발적 선언을 누구보다 먼저 내놓은 김지룡이 또 한발 앞장 섰다. '매를 맞든, 칭찬을 받든' 나를 먼저 벗어보이겠다고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를 내 놓은 지 아홉달 만에 그가 〈개인독립만세〉(살림)라는 제목의 책으로 독자 앞에 다시 나타났다.

언제나 자기 이야기를 자신 있게 풀어놓았던 그이기에 '개인주의'를 이야기한 책을 낸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을 것이다.

- 지난 번에 성체험 고백서 형식으로 낸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명진출판)는 반응이 어땠어요?
“전부터 제 책을 보시던 독자들께서 많이 보신 것 같아요. 새로 보신 분들 가운데에는 그 책에 야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책을 낸 뒤로 항의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왜 비밀스러워야 할 남자들의 생활을 까발겨 놓느냐는 거죠. 부부 간의 신뢰가 깨지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독자분께 '선생님만 당당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남자들의 배신자'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죠.

그보다 귀찮았던 것은 제게 '바람직한 성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으로 성에 대한 이론적인 주장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거였어요. 저는 단지 제 이야기를 한 것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도 맞추는 이론이나 주장을 들먹인 게 아니에요. 그래서 한 3개월 전쯤부터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 저로서는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가 좀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은 책, 신문, 잡지 등 어마어마한 정보를 읽어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읽기 힘든 글로 독자를 괴롭힐 생각은 없어요. 중학교 2학년 정도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나 혹은 화장실에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요즘 필요하다는 겁니다. 단어 하나라도 걸리면 이 바쁜 세상에 어떻게 끝까지 읽겠어요. 저는 책을 쓸 때 항상 마지막 2달 정도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첨가하고, 어려운 단어를 쉽게 바꾸는 일을 합니다.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지요.”

- 이번에 새로 낸 책 〈개인독립만세〉는 그 동안의 책과 좀 다릅니다. 무엇보다 이 책 안에는 대단히 많은 책들이 소화돼 있다는 거죠. 정말 들입다 읽어 치우셨더군요. 그 중에는 대단히 어려운 책들도 있는데, 이 책에 쓰신 글들이 역시 중학교 2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이지요. 단 제도파 경제학 이야기가 조금 어렵다는 건 인정합니다. 제도파 경제학은 서구 경제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갖는데, 우리에게는 소개된 바가 없지요. 그러다 보니 어렵다기 보다는 좀 생소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인정합니다."

- 노동에서의 휴머니즘을 이야기할 때 김지룡님은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민음사)을 거론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공연히 현학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제레미 리프킨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랬을 지도 몰라요.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엔트로피〉(범우사)였는데, 그 뒤 〈노동의 종말〉을 읽을 때, 앞의 책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굉장히 충격적이었거든요.”

- 그 책 뿐 아니라, 많은 책과 필자들을 언급했거든요. 그걸 과연 다 읽었는지 궁금해졌어요. 이 많은 책을 읽기는 무진 힘들었을텐데요.
“제가 좋아하는 책과 필자들의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피터 드러커는 제가 참 좋아합니다. 드러커의 〈단절의 시대〉는 50년대에 쓴 책인데, 그걸 80년대에 봐도 틀리는 게 없거든요. 일본에서는 마치 우리나라 일류 대중소설 팔리듯 팔리고 있거든요. 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피터 드러커 정도는 읽어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언급했던 거죠.”

- 평소에는 어떤 종류의 책을 얼마나 보시는지요?
“일본 책이나 우리 책이나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3권 정도는 읽어요.”

- 일서나 우리 책이나 읽는 속도는 비슷하시죠?
“그렇죠. 6개월 쯤에 한번씩 일본에 가는데 그때마다 책을 5,60권 정도 사 옵니다.”

- 책의 서문에서 '진정한 개인주의'라는 말을 하셨지요?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라는 표현에 대한 반응이 안 좋잖아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기 십상이죠. 바람직한 개인주의를 보여주겠다는 의미에서 강조한 겁니다."

- 지금 이 시대에 왜 개인주의를 이야기했나요?
“‘우리’라는 개념은 이제 사실상 불분명해졌습니다. 거기에 뭉쳐서 함께 지향해야 할 목표는 이미 상실됐습니다. 그 불분명한 '우리'에 매달리지 말자. 우연히 같은 전철에 타는 바람에 달려가는 방향이 같다 할지라도 그건 잠시 뿐이지요. 각자의 삶의 목표는 다 다른 것이지요. 그렇게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서로간의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주의가 필요한 겁니다. 각자 진정으로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의 삶을 인정하는 개인주의가 필요한 겁니다.”

- 네트워크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고 하셨지요?
“사람간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인터넷에 들어가 보세요. 서로가 서로를 개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습성 때문에 우리는 서로 비난하고, 욕설을 퍼붓는 겁니다. 사람간의 관계인 네트워크로 사람들이 엮이면서 이제 생존 수단이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드릴께요.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라 팍스넷의 박창기 대표 이야기인데, 세상에서 가장 큰 생물이 뭔지 아세요? 미국의 어느 주에 가면, 거대한 아카시아 계통의 나무 숲이 있답니다. 그 숲의 나무들을 파고들어가 보면, 그 거대한 숲의 나무들이 하나의 뿌리로 이루어졌대요. 그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단일 생물이라는 이야기예요. 박창기 대표는 인터넷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죠. 네트워크 안에서의 자유가 마치 개인주의로의 분화가 진전된 결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네트워크로 여러 개인을 공동체 안에 엮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거죠.

“저와는 생각이 약간 다르네요. 공동체를 이루려면 관리와 조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관리와 통제를 거부하는 공간입니다. 인터넷은 개인주의를 보완하는 것이지, 굳이 공동체로 하나로 통제하는 생존 공동체는 아니라는 것이에요.”

- 김지룡님은 이 책에서 나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만큼 개인의 선택을 강조합니다. 김지룡님 주장대로 구성되는 그런 사회, 집단이 있다면 내가 선택하고 싶은 집단이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김지룡님의 개인주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좋은 집단을 만들자는 주장이 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사람이 깊은 산 속에 혼자 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어쨌든 사람은 모여 살아야 하는데, 그 곳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편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거죠. 저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편한 세상이 아니라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요.

- 이 땅에서 사는 게 그야말로 개인주의가 마음대로 꽃을 피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죠?
“개인주의자인 제가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좋겠죠.”

-친절과 같은 맥락에서 칭찬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이건 공동체의 미덕이지 개인주의의 미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개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을 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체 안에서라면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도 살아남을 수 있겠죠. 시골 공동체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이제 서울에서는 왕따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안의 누군가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진 겁니다."

-칭찬은 때로 가식이 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만나면서 살게 되잖아요. 그런 사이에서는 서로 칭찬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도 칭찬해야 합니다. 그게 개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고, 개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겁니다."

빠른 스텝으로 세상 속을 걸어다니는 프리랜서 김지룡님. '세상에 적응하지 말자'라는 화두로 내놓은 '개인주의' 선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을 것이며, 전에도 그러했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을 것인가. 지켜 볼 일이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개인독립만세(살림)
*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명진출판)
*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명진출판)
*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저, 최현 역, 범우사)
*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저, 이영호 역, 민음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