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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스포츠 외교의 전령사 로이 킨

중앙일보

입력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 주장이 우리나라 수원 삼성 팀을 `주장 완장'을 차고 이끌면서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일궈 나간다. 홈구장의 팬들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나라 모든 축구 팬들은 그를 `총과 대포를 녹여 축구공을 만들어 스포츠 외교를 펼쳐 나가는 전령사'로 칭송하며 그가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호로 화답한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아무리 햇볕정책이다 뭐다 해도 아직은 꿈도 꿀 수 없는 잠꼬대 같은 소리다.

그러나 로이킨의 얘기를 접하고 보면 이 `헛소리'가 충분히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영국과 1000년이라는 기나긴 살육전을 치르고 있는 종족인 아일랜드 출신이며 이 아일랜드 공화국의 대표팀 주장이자 영국의 최고 명문팀, 아니 유럽 축구계를 평정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에 빼앗긴 자기나라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에서 영국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지금도 총칼로 맞서며 전쟁을 치르고 있다. 1971년 코크라는 아일랜드의 한 지방에서 태어난 로이킨은 1990년 6월 영국 프로축구계에 첫발을 디뎠다.

그가 처음 소속됐던 팀은 노팅햄 포리스트였고 킨은 이곳에서 93년 맨체스터로 옮기기 전까지 만 3년여동안 활약을 했다. 그리고 이 맨체스터에서 이제는 없어선 안될 아이리시(아일랜드 사람)로 자리를 굳혔다.

10여년 가까운 그의 영국축구 `정벌사' 도정을 통해 그는 남을 칭찬하는데 꽤나 인색한 편인 영국인들로 부터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 "완벽한 전천후 미드필더를 찾고있습니까?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스태미나, 훌륭한 볼 가로채기 기술, 여기에 타고난 지도력까지 겸비한 그런 선수를 원하십니까? 글쎄, 더 이상 찾아 헤매지 마세요. 로이 킨이 있습니다."

킨에 대한 내부평가는 한 술을 더 뜬다. 맨체스터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그를 `롤스 로이스의 엔진을 장착한 선수'라고 부르고 코치 마르셀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심장 고동'이라 칭한다. 맨체스터의 미드필드에는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와 사생활은 이미 전세계 축구팬들에겐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이 킨의 경기 스타일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수비수와 공격진의 완벽한 연결을 해주는 동시에 상대방의 공격을 중도에 효과적으로 차단,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물론 아주 거칠기도 하다.

그가 없는 맨체스터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랬다. 그가 무릎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거의 경기에 출전을 못했던 지난 1997년에 맨체스터는 영국내최고위 리그인 프리미어십 챔피언 자리를 아스날에 넘겨주는 등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기적적인 부활과 함께 시작한 1998년 시즌은 이 팀 창단 이래 가장 훌륭한 성적을 남긴 해로 기록됐다.

'FA Cup'과 프리미어십은 물론 유로피언 컵을 동시에 거머쥐는 천하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이 기록은 이전까지 유럽의 어느 명문구단도 이뤄낸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초반 로이 킨의 출발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지난해 5월에 발생했던 술집 폭행사건의 여파도 남아있었고 여기에 재계약 문제, 무릎부상 재발로 인한 3주간의 결장 등 악재가 잇따랐다.

그가 빠진 맨체스터는 지난 시즌에 보여줬던 화려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맨체스터의 심장 고동은 지난 9월22일 유럽의 최강자를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에서부터 다시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출전한 이 `완장 찬 아이리시'는 오스트리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구장에서 가진 홈팀 스텀 그라츠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뽑아내며 포문을 열었다. 맨체스터의 전사들은 그의 노련한 현장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며 그 결과는 3-0이라는 대승으로 이어졌다.

로이 킨의 부활은 맨체스터가 본격적인 우승사냥에 나섰다는 것을 포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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