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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 일본기업과 언론 집중포화 … 이유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과도한 자문수수료와 인수비용을 지출해 의혹을 샀던 일본 올림푸스의 속셈이 드러났다. 바로 경영 과정에서 생긴 손실을 메우기 위한 ‘꼼수’였다. 실제 인수비로 적은 돈을 사용하곤 터무니없는 거액을 쓴 것처럼 처리해 남는 돈을 회사 빚을 갚는데 쓴 것이다.

외신들은 이같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일본 기업의 도덕성과 폐쇄성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외신들은 일본 언론의 이런 태도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세계를 무대로 한 올림푸스의 편법=블룸버그 통신 등 세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올림푸스는 8일 도쿄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2008년 영국 의료기기업체 자이러스를 인수할 당시 자문사에 지급한 거액의 수수료와 2006~2008년 일본 내 중소업체 3곳에 쓴 인수 자금 등을 주식 투자 등으로 생긴 회사 손실을 메우는 데 이용했다”고 발표했다. 올림푸스는 제3자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며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다카야마 슈이치(高山修一)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유가증권 투자손실을 메우려고 인수합병 자문료 등을 이용했다"며 “회계상 매우 부적절한 처리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또 기쿠카와 쓰요시(菊川剛) 전 회장 겸 사장과 모리 히사시(森久志) 부사장, 야마다 히데오(山田秀雄) 상근감사가 책임이 있다며 모리 부사장을 8일자로 해임했고, 야마다 감사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했다. 또 필요하다면 3명을 형사 고발하겠다고 덧붙였다.

2008년 올림푸스는 영국 의료기기업체 자이러스를 19억2000만달러(약 2조 1500억원)에 인수하면서 자문회사 두 곳에 인수금액의 3분의 1에 이르는 6억8700만달러(약 7690억원)를 자문료로 지급했다. 대체로 기업인수합병 자문료가 거래가격의 1%인 데 비해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하지만 자문료는 인수한 자이러스의 주식을 팔아 만든 ‘공짜 돈’이었다. 이후 올림푸스는 이렇게 판 자이러스의 주식을 지난해 3월 6억2000만달러(약 6940억원)에 자문사로부터 되샀다. 자문사인 악세스아메리카와 악삼인베스트먼트는 조세피난처인 케이맨군도에 적을 둔 소재가 불분명한 회사였다. 특히 악삼인베스트먼트는 자문료를 받은 지 3개월 만에 금융회사 등록이 취소돼 소멸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보아 올림푸스는 거액의 회사자금을 자문수수료 형식으로 알려지지 않은 유령 자문회사로 보내 빼돌린 다음 이를 다시 회사 금액으로 되찾아오는 수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자이러스 인수 가격도 실제 시세보다 배이상 높게 매겨져 남는 인수자금이 유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중소업체 3곳을 실제 시세보다 거액으로 인수했던 것도 이런 수법이었다. 당시 올림푸스는 3개 업체 인수에 734억엔(약 1조 500억원)을 썼다. 하지만 업체들의 총 매출은 20억엔이 되지 못했다. 역시 소액의 인수비로 인수합병을 성사시켜 놓고 거액의 인수비용을 들인 것처럼 공표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인수합병을 통해 올림푸스측은 1000억엔(1조 4300억원) 가량을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법행위 폭로한 외국인 CEO전격 해임=파이낸셜 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들은 이번 사건이 일본 기업의 폐쇄적인 지배구조와 불투명한 경영체질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사실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는 올림푸스 경영진 내부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4월 취임한 마이클 우드포드 올림푸스 사장은 기업 인수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들였다는 의혹을 접하고 기쿠가와 회장과 모리 부사장 등에게 진상을 물었지만 “걱정할 필요없다”는 답만 듣고 명확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수차례 답변을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결국 우드포드 사장은 한 컨설팅업체에 직접 의뢰해 조사에 나섰다. 이를 통해 자이러스와 3개 일본 중소업체 인수에 과도한 비용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달 11일 우드퍼드 사장은 서신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이사회에 제기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3일 뒤 우드퍼드 사장을 도리어 취임 6달만에 전격 해임했다. 이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기쿠가와 회장이 해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쿠가와 회장은 우드퍼드를 해고한 직후 사장직까지 겸직하며 경영 전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ㆍFT 등이 우드퍼드 사장 해임을 놓고 올림푸스측의 경영 불투명성을 대대적으로 비판 보도 하면서 사태는 반전됐다. 의혹이 커지자 기쿠가와 회장은 지난달 26일 사장직에서 물러났고 결국 올림푸스측은 8일 사건의 진상을 발표했다.

WSJ는 “올림푸스 사건은 경영 수뇌부의 합의에 따라 운영되는 일본 기업의 폐쇄적 경영풍토가 드러난 예”라며 ”외국인 CEO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더라면 올림푸스 내부의 문제들이 지금까지 묻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신,“자국기업 비리 외면한 일본언론도 한통속”=외신들은 이번 사건이 이처럼 국제적인 스캔들이 된 데는 일본 언론이 한 몫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외국인 CEO가 자국 기업의 비리를 폭로한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자국 기업을 감쌌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일본의 월간 경제전문지 팍타(Facta)가 먼저 보도했다. 팍타는 당시 “올림푸스가 지난 2006년~2008년 일본 중소기업체 3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지출하고 자이러스도 실제 주가에 58%나 프리미엄을 얹어 인수했다”고 전했다. 우드퍼드 사장이 기업 합병 과정의 문제점을 처음 안 것이 바로 팍타의 기사였다. 하지만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 같은 사실을 최근까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FT는 “일본의 대표적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차 기쿠가와 회장이 사임한 뒤에야 이번 사건을 1면에 보도했다”며 “자국기업을 비판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는 일본 언론들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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