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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화가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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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것이 없어도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가슴 벅찬 이들이 모여 사는 곳. 집단창작촌을 이뤄 오순도순 생활과 작업을 함께 하는 미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부터 폐교·축사를 개조한 곳, 시(市)의 정책적 지원을 받는 곳 등 창작촌의 형태도 다양하다. 전국의 집단창작촌 중 대표적인 5곳을 탐방한다.

"작업실은 어디십니까?" "양평입니다." 화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양평에서 작업한다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경기도 양평은 집단창작촌의 원조 격이다.

1980년대 후반 화가 민정기씨가 모친의 산소가 있는 양수리 동녘골로 이사온 이래 지금까지 약 3백명의 작가들이 둥지를 틀었다.

90% 이상이 서울에서 아예 살림을 옮긴 '양평 주민' 이다.

어떤 이는 양평을 "무명에서 스타까지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 이라고 말한다.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 왔다.

'양평 1세대' 로는 서울대 미대 하동철 학장을 비롯, 이동표·이우설·김세환·김성식·이양원·김근중·이종빈(한국미술협회 이사)·류민자(고 하인두 화백 부인)·홍용선·송계일·서용선씨 등이 꼽힌다.

김강용·김인옥 부부, 박동인·김동희 부부도 강하면 항금리와 전수리에 각각 살고 있다.

98년에는 양평 미술인협회(회장 이환)도 결성됐다.

대부분 90년대 초 땅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던 시절 아틀리에를 지어 이사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거리지만 1시간만 나오면 서울과 전혀 다른 남한강 주변의 흙 냄새와 물 소리가 물씬 느껴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로 모여사는 곳은 강상·강하면, 서종면, 용문면 등 세군데. 강하면 항금리의 축사를 개조한 살림집 겸 작업실에 7년째 살고 있는 김영리(41)씨는 홍익대를 나와 뉴욕 생활만 8년한 '도시내기' 다.

지금은 동네에서 '쌍둥이 엄마' 하면 통할 정도로 시골 아낙이 다 됐다. 텃밭에서 키운 감자·고구마·배추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즐긴다.

도시인들의 어두운 모습을 주로 그렸던 예전에 비해 양평에 온 후부터 야생화를 그린다.

"눈에 보이는 게 꽃이에요. 가만히 구름 흘러가는 것, 바람 부는 것 보고 있자면 저절로 캔버스를 펼치게 돼요." 장민석(판화)·이진경(탱화)씨는 정담도 나누고 비평도 교환하는 김씨의 이웃사촌이다.

3년 전부터는 정채·이상우씨 등 젊은 작가들이 옮겨오기 시작했다.

파리 등 외국에서 호화롭진 않지만 비교적 넉넉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업했던 이들이다. 프랑스 유학파인 이영부(36)씨는 "임대료도 비싸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고 말한다.

정착한 지 오래된 작가들 중 완전히 '토박이' 가 된 사람도 있다.

서양화가 심문섭씨와 최석운씨는 각각 서종면 노문리와 양동면 단석리 이장을 맡고 있다. 박동인씨는 양평군 선관위 위원이다.

양평 화가마을의 특징은 서울의 화랑에 전속된 몇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양평 안에서 작품이 팔린다는 것. 갤러리 아지오(0338-774-5121)가 해마다 개최하는 '남한강 사람들의 그림 이야기' 전과 작가들의 개인전이 그 역할을 한다.

일산·분당 등 신도시와 송파·강동의 아파트촌에 거주하는 중산층이 주 고객인데, 호당가격제가 아니라 작품당 가격제(주로 1백만원 미만)를 내세운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서양화가 L씨의 경우 최근 2년간 40여점의 작품이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아지오는 당일·1박2일 코스로 화가마을을 둘러보는 예술기행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남한강변에 들어찬 러브호텔과 갈비집의 기세가 무섭긴 하지만 화가들의 얼굴은 어둡지 않다.

양평군에서 화가마을을 중심으로 한 약 10㎞ 거리를 '예술의 거리' 로 육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문화재단은 갤러리 아지오의 '남한강…' 전의 역할을 높이 사 올해부터 지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도움말 주신 분 : 갤러리 아지오 손갑환 디렉터. 강재영 전 환기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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