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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맹독성을 드러내라

중앙일보

입력

X세대 세 명이 계곡에 놓인 다리 위에서 자신들이 번지 점핑을 할 골짜기를 가늠한다. 그들은 강렬한 사운드트랙에 맞춰 차례로 점프한 후 바위 위에 놓인 ‘스플로드’ 음료수를 집어드는 묘기를 펼친다. 첫번째와 두번째 점퍼는 하늘로 다시 튀어오르는 순간 캔을 열어 포말을 휘날리며 음료수를 입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세번째 점퍼의 순서에서는 캔이 폭발하며 거대한 불덩이가 그를 집어삼키고 만다. “사용자의 3분의 1을 실제로 죽이는 제품은 담배뿐입니다”라는 문장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요즘 미국에서 흑색광고의 새 차원을 보여주는 것은 대통령 후보들 뿐이 아니다. 이 ‘스플로드’ 광고는 청소년 흡연예방을 겨냥해 새로 시작된 1억8천5백만 달러 규모의 광고 캠페인중 하나다. 따분한 메시지로 금방 외면당하던 과거의 공익 광고와 달리 이 새로운 최첨단 광고는 청소년 인기프로 ‘도슨즈 크리크’ 같은 황금시간대 프로에 방영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도전적인 태도다. 조사에 따르면 10대들은 담배업계를 정면공격하는 광고에 가장 잘 반응한다. 미국 의학협회誌(JAMA)
에 실린 한 조사는 “反흡연 광고의 경우 거창하고 강력하고 노골적이며 도전적일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광고 제작자들은 공격 강도의 적정선을 찾기 위해 줄타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 멀티미디어 광고 캠페인은 흡연율 감소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 아메리칸 리거시 재단(ALF)
의 후원을 받으며, ALF의 돈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대형 담배회사들이다. 담배업계가 2천4백60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 화해의 일환으로 1998년 그 단체의 설립자금을 댄 것이다. 그러나 담배 회사나 업계 중역에 대한 비방 목적의 광고를 내보낼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담배업계가 광고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은 없지만 최근 그 조항을 들어 두 편의 광고를 취소시켰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다수가 10대에 흡연을 시작한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어린 청소년들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은 광고다. 최근 미국의 한 보건지에 발표된 反흡연 광고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런 광고를 정기적으로 접한 12∼13세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에 비해 흡연을 시작할 확률이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反흡연 광고를 제작할 때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예를 들면 ‘하지 말라’는 용어를 피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하는 반항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대의 관심을 끌 만큼 강렬하고 감각적인 광고를 만들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지난해 플로리다州 당국의 발주로 크리스핀 포터 & 보거스키社가 제작한 광고에서는 담배회사의 중역회의에 저승사자가 걸어 들어간다. “당신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하루에 1천 명씩? 좀 봐 달라구. 저승사자는 나 하나뿐이야.” 그는 하루 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하지만 묵살당하자 연줄을 동원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악마가 내 친구야.”

크리스핀 포터社는 역시 플로리다州의 요청으로 ‘몰래 카메라’ 형식의 또 다른 광고를 만들었다. 그 광고에서는 두 연기자가 실제 필립 모리스社 공장으로 차를 몰고 가 경비원에게 말버러 맨을 만나러 왔다고 말한다. 몰래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그 경비원은 슬픈 소식을 전한다. “그 분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필립 모리스가 ‘비방’ 조항을 들어 중단시킨 두 광고에도 비슷한 방식이 동원됐다. 한 광고에서는 10대 두 명이 거짓말 탐지기라고 쓰인 가방을 들고 필립 모리스의 뉴욕 본사 로비에 들어선 후 흡연의 중독성 여부에 대한 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 거짓말 탐지기를 마케팅 담당부서에 전달하고 싶다고 알린다. 당황한 듯한 경비원 몇 명이 황급히 그들을 밖으로 내몬다.

두번째 광고에서는 10대들이 트레일러와 함께 필립 모리스 본사 앞에 멈춰선다. 그들은 시체 자루라고 적힌 수백 개의 길다란 흰색 주머니를 트레일러에서 내린 뒤 건물 양편을 따라 쌓아 올린다. 그리고 10대중 한 명이 메가폰을 쥐고 건물을 향해 “매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담배로 사망하는지 아는가”라고 외친다. 두 광고 모두 그 담배회사가 필립 모리스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필립 모리스의 청소년 흡연예방 담당 중역인 캐롤린 레비는 “그 광고가 ALF의 방향과 임무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ALF의 한 대변인은 광고를 수정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전했다. 필립 모리스의 한 대변인은 논평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그 두 광고에 홍보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지난 10일 美 비흡연자 권익보호 재단은 웹사이트 no-smoke.org에서 그 두 광고를 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담배 광고를 둘러싼 싸움은 올해의 대통령 선거전보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뉴스위크=Adam Bryant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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