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농로 폐쇄 미루는 새 외부 단체 들어와 사태 악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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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01면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이 약 2000명쯤 되는 평범한 어촌이던 이곳엔 요즘 살벌한 긴장감이 감돈다. 해군이 1조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2014년까지 건설하려는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웬 말이냐”며 육지에서 몰려온 진보 성향 재야·시민단체 회원들이 해변에 텐트를 치고 시위 중이다. 48만㎡ 규모인 수용토지에 대한 보상은 이미 다 끝났다. 땅 주인 169명에게 약 600억원이 지급됐다. 일부는 처음부터 찾아갔고 반대하던 30여 명도 결국은 공탁금을 모두 수령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찬성·반대로 갈려 있다. 육지에서 시위대가 온 뒤엔 반대파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해군기지 건설 난항, 제주 강정마을은 지금

7월 28일 오후 5시쯤, 취재팀은 현장인 구럼비 해변을 찾아갔다. 구럼비는 바위에 돌을 굴려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란 뜻이다.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났다. “여기 왜 왔어, 가란 말이야.” 낯이 익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문정현 신부였다. 문 신부는 아예 주소를 이 마을로 옮겼다. 취재 기자라고 밝히자 주변에 있던 붉은 상의를 입은 젊은이가 나서며 “쓰레기 같은 신문”이라며 조롱을 퍼부었다.

해군은 군항 예정지 주변 1.6㎞ 구간에 가설 방음벽을 설치했다. 하지만 중간에 뚫린 농로를 통해 시위대가 들어왔고, 해안에 각종 조형물과 텐트, 가설 무대까지 설치했다.(사진) 여기저기에 ‘No, 해군기지’ ‘강정 사수, 기지 건설 저지’ 같은 구호들이 눈에 띈다. 농로 입구에는 남녀 7~8명이 있었고 그중 한 남성은 쇠사슬을 몸 위에 얹고 있었다. 이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현장 취재를 하려고 한다”고 하자 미디어 담당이라는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보더니 “들어가라”고 허락했다. “여긴 국유지인데 무슨 권리로 출입을 제한하느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에 앞서 27일 밤 9시15분쯤에는 공사장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70여 명 정도고 육지에서 온 시위대와 현지 주민이 뒤섞여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가가자 한 젊은이가 “어서 왔수과. 해군서 왔수과”라며 시비를 걸었다. 다른 사람은 사진기를 뺏으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욕설을 퍼부었다. 길 건너편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해군의 계획에 따르면 공사는 30% 정도 진행됐어야 하는데 현재는 14%에 불과하다. 시위대 때문만은 아니다. 공사를 진행하려면 서귀포시가 군항 예정지를 가르는 농로를 폐기하는 행정절차를 밟아줘야 한다. 하지만 고창후 서귀포시장은 군항 반대를 주장하던 변호사 출신이다. 우근민 지사는 군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작 해당 지역 시장에는 반대파를 임명해 문제가 더 꼬이게 된 것이다. 시간을 끌던 서귀포시는 29일 농로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서귀포 경찰은 “시가 법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한 개입할 수 없다. 저항의 빌미만 준다”는 입장이다. 지난 21일에는 시위대가 서귀포 경찰서를 방문했던 조현오 경찰청장의 차량 아래로 들어가 경찰청장이 10여 분간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속전철 건설 당시에는 경남 양산시 천성산에 살고 있는 도롱뇽이 멸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사가 모두 6개월간 중단됐었다. 해군사업단장 이은국 대령은 “군항 공사가 중단되면 매달 60억원씩 손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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