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기수문화’ 시대착오적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검찰은 상명하복(上命下服) 논리가 지배하는 조직이다. 사법시험 또는 사법연수원 기수(期數)를 기준으로 그 서열이 매겨진다. ‘기수 문화’는 신임 검찰총장에 내정되거나 취임하면 총장의 선배·동기 검찰 수뇌부가 스스로 옷을 벗는 걸 관행으로 만들었다. 이런 독특한 전통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서열에 익숙한 검찰 간부들은 후배나 동기의 지휘를 받는 상황에 익숙지 않다. 신임 총장이 소신껏 지휘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담겼다. 인사에 숨통을 터주는 측면도 있다. 검찰 내부에선 ‘용퇴(勇退)’라고 부른다.

 똑같은 현상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생 5명이 국회 인사청문회(8월 4일)를 전후해 동반퇴진키로 했다. 줄사표에 따른 지휘부 공백을 우려하며 기수 문화를 끊어보자는 정부 측의 만류는 뿌리 깊은 관행을 넘지 못했다.

 기수 문화는 수십 년간 쌓아온 경륜을 한꺼번에 사장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0세에 도달한 요즘이다. 한창 공직을 위해 일할 나이에 변호사로 개업해 전관예우나 기웃거리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또한 지나친 연소화(年少化)는 검찰의 위상과 정치적 중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장관들의 평균 연령은 58.5세다. 52세의 한 후보자보다 6.5세 많다. 법원의 경우 한 후보자의 사법연수원 동기생은 고등법원 부장판사급으로 아직 일선 법원장조차 없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검찰’의 말발이 서겠는가.

 폐쇄적인 서열과 기수 문화가 개인 진퇴를 결정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일그러진 ‘의리 문화’는 민간 부문에선 사라진 지 오래된 개념이다. 2005년 취임한 정상명 전 총장 시절 대검 차장 등 동기 3명이 검찰에 남아 함께 일했던 전례가 있다. 공공의 이익과 정의를 수호한다는 법 집행기관에서 오로지 기수 때문에 사표를 던진다는 것은 한 편의 희극과 다를 바 없다. 낡은 틀을 깨야 한다. 검찰에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동기와 후배라도 상전(上典)으로 모실 수 있다는 새로운 검찰 문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