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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나토 시대’ 한국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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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의 관계는 좌뇌·우뇌의 관계와 같다. 긴밀히 연결돼 협업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딴판이다. 무역전쟁·환율전쟁이라는 말은 있지만 국제경제의 세상은 총·칼을 들고 싸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반면에 국제정치에서 싸움은 필연적이다.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서로 필요한 윈윈(win-win) 관계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언젠가 한판 붙어야 할지 모른다. 냉전시대와 마찬가지로 미국 혼자서는 힘들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같은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

 문제는 나토가 삐걱거린다는 점이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졌으니 28개 나토 회원국들은 공동의 전략도 공동의 이익도 없다.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옛소련권 국가들의 가입으로 몸집만 불었다.

 역사적 소명을 다한 나토를 확대 개편해 러시아·중국까지 끌어들이는 것도 방안이다. 한국도 나토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나토는 한국 같은 나라들과 협력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탈(脫)나토 시대가 이미 개막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모든 단거리 전술핵을 유럽으로부터 철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협상은 나토 정상회의와 세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동시에 열리는 내년 5월 시카고에서 종결된다.

 지난달 30일 퇴임한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10일 브뤼셀 나토본부에서 행한 연설에서 회원국들을 질타했다. 회원국들의 군사력 증강, 국방비 증액 없이는 나토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 비공개 회의에서 게이츠는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폴란드·독일·네덜란드·터키·스페인 등 국명을 거론하며 대(對)리비아 군사행동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사실 나토 회원국들이 제 몫을 하게 만드는 것은 나토 62년 역사 내내 미국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미국은 나토의 ‘무임승객(free-rider)’에 대해 항상 불만이다. 지금은 경제위기 때문에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을 돕고 싶어도 여력이 안 된다.

 나토가 효용성을 상실했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올해 초 “미국은 딴 데서 보다 믿을 만한 국방 파트너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새로운 동맹은 필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나토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나라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한국·일본·호주와 중동 지역의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미국과 중국은 올해 1월 군사관계를 복원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문제로 관계가 단절 된 지 1년 만이었다. 한국엔 미국과 중국이 이따금씩 아옹다옹하다가도 다시 군사 대화·협력관계가 봉합이 되는 게 좋을지 모른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우리 우방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다. 양국 교역은 2010년 중국 측 통계로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중국 외교부는 “한·미 동맹은 역사의 유물”이라고 했다. 중국의 이러한 주장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의미’에서 중국의 말은 맞다. 소련의 붕괴로 나토가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것처럼 궁극적인 한반도 통일이나 급격한 동북아·세계정세 변화는 한·미 동맹을 역사의 유물로 만들 수 있다. 한·미 동맹이 불필요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미 동맹의 깊이와 넓이의 확장이 필요한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일본은 미·일 동맹의 강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일 양국은 지난달 21일 외무·국방장관 회담인 안보협의위원회(2+2회담)를 개최했으며 9월께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 동맹 강화 21세기 비전을 발표한다.

 한국이 선택의 폭을 넓혀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악의 상황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미 동맹 강화에서 군사적으로는 철저한 고립주의까지 모든 진로를 검토하는 것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