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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의 사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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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

등산을 다녀와 막걸리를 두어 잔 걸친 뒤 목욕탕에 들르곤 한다. 하산 뒤에 땀내가 밴 몸을 말끔히 씻어 내고 단단히 굳은 하체 근육을 풀어주는 일. 그뿐인가. 목욕은 정신도 바짝 들게 하는 느낌을 주고, 무슨 죄의 허물도 벗겨낸 기분에 그 고마움까지 더해지니, 하산 뒤 목욕탕 가는 일이 하나의 즐거운 취미가 된 셈이다.

 그처럼 목욕탕에 다니던 어느 날. 주말이라선지 그날따라 목욕탕 안은 사람들로 좀 붐볐다. 쏟아지는 샤워기 물에 몸을 씻는 이들, 여기저기 물은 사방으로 튀고 온탕에선 물이 벅차 오르는 소리, 냉탕에는 아이들의 물장구치는 소리, 바닥 수챗구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요란한 물소리, 환풍기가 힘겹게 돌아가는 소리. 마치 붐비는 저녁 시장통에 온 것처럼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내면에선 어떤 고요가 일정 정도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인가. 탕 안에 조심스레 몸을 담근 뒤 자연스레 눈을 지긋이 감게 된다. 잠시 호흡도 가다듬는다. 소란함에도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지금 나는 산중 어느 계곡에 와 있음이고, 주변은 온통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로 가득하다.” 소란함은 어느새 안온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우나 속은 몸으로 고해성사라도 하는 양, 누군가 뜨거운 열기 속에 줄줄 땀을 흘리고 있다. 체내의 ‘나쁜’것들 빠져나가라며 주문도 외는 모습이다. 한껏 집중력을 발휘해 때를 미는 사람, 물컹물컹한 몸을 간이침대에 눕혀 태평하게 코를 고는 사람, 안마탕에선 물 펌프에서 들이미는 물줄기에 엉덩이를 갖다 대고 끙끙거리는 노인. 암튼 그 몸에 무슨 안녕을 기원하는 역력한 눈빛이었다.

 그런 것인가. 여긴 모두가 벌거숭이, 몸뿐인 세상. 무슨 명예나 재산, 자존심 같은 것들은 모두 밖에 맡겨두었다. 더 깊이 보면 이름도 밖에 둔 채 몸만 갖고 들어온 셈이다. 아무렴 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평등한 입장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지금 여기에선 갖고 있는 게 몸뿐이어서, 아니 생각까지 모두 무장해제되어서, 이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어떤 일관된 침묵에 모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어찌 보면 희뿌연 수증기 속에 생명체라고 하는 것들이 유령 같은 몸을 입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으로도 비친다. 모두가 ‘평등한’ 이 분위기 속에 침잠하다, 문득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똑같이, 완벽하게, 평등한’ 이 세계에서 ‘나’라고 하는 개체 의식이 수증기 속에 슬며시 사라지는 느낌. 모두와 하나가 되는 느낌. 평온한 느낌이었다. 나와 너는 둘이지만, 결국 인간들 모두는 하나라는 의식이었다. 우주 전체의 모든 생명에 대한 공명으로도 통했다. 어쩌랴. 그 하나의 ‘생명’에서 이렇듯 여러 인간이 다투어 나온 것이다. 말짱한 정신이나, 이런 ‘환상’에 젖다 보니, 아만(我慢)의 세상에 대해 서글픈 마음도 드는 것이다. 아직도 ‘나’란 생각에 집착해 살고 있음에 대한 어리석음이었다. 야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렇다. 물끄러미, 이 세상은 분명 꿈이었다.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