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 병사 80%는 적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 살인이 싫어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
이동훈 옮김, 플래닛
512쪽, 2만2000원

문학과 함께 전쟁을 화두로 삼았던 미국 작가 헤밍웨이에 따르면,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내전 당시 ‘가망 없는 겁쟁이’들이 무척 많았다. 그들은 종종 자해(自害)를 감행하기도 했는데, 병원에 후송되려는 잔꾀였다. 헤밍웨이가 편집한 『죽은 자는 말이 없다』(‘전장의 인간’ 제1권, 섬앤섬)에 따르면, 스페인내전만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대에서도 자해자가 속출했다.

 그런 이야기는 전쟁터에서의 용기를 강조하기 위한 사례다. 군사심리학의 이정표로 평가 받는 『살인의 심리학』도 헤밍웨이의 관찰을 일단 수긍한다. “역사는 전투를 피하기 위해 자살하거나 자해를 저지른 군인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135쪽)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유인데, 통념과 전혀 다르다. 자살·자해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적을 포함한 인간을 죽이는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 때문이라는 게 이 책의 통찰이다.

 뒷받침하는 각종 증거가 꽤 충격적이다. 2차 대전 당시 전투에 투입된 병력 중 15~20%만이 적을 향해 총을 쐈다. 나머지는 엉뚱한 곳에 총격을 가하거나, 아예 총을 쏘지도 않았다. 인간을 죽이고 싶은 않은 본능 때문이다. 때문에 전쟁터 사상자의 대부분은 총격전이 아닌 포격전 상황에서 발생한다. 공중전도 그러하다. 2차 대전 당시 전투조종사 중 1%만이 적기의 30~40%를 격추시켰다. 99%는 무얼 했단 말인가?

 그들은 단 한 대의 적기도 떨어뜨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격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보다 음미해 볼만한 내용은 참전용사의 9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다는 지적이다. 퇴역 뒤 다양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인데, ‘전쟁터의 과학’으로 유감 없는 이 책의 결론도 자명하다. “(영화 주인공) 람보 같은 남자다움은 없다”(428쪽). 그럼 이 책은 전쟁영웅담을 뒤집는 반전(反戰) 메시지일까. 그렇게 해독할 수 있지만, 실은 반대쪽이다.

 헤밍웨이의 말대로 “나는 전쟁을 싫어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패배”이다. 현실역사에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정교한 전투 과학으로 병력의 효율을 높이고, 군대를 관리할 필요는 더욱 높아진다. 이 책이 웨스트포인트 등에서 두루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저자 역시 미 육군 예비역 중령 출신이다. 1995년 퓰리쳐상 후보에 오른 책답게 놀랍도록 정교한 서술, ‘전쟁의 진실’을 재구성하려는 치열함이 썩 볼만하다. 논픽션의 한 봉우리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