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이 유독 ‘트랜스포머’에 미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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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트랜스포머’ 3편은 3D라는 ‘첨단무기’를 장착하고 오토봇 군단과 디셉티콘 군단의 격돌을 보여준다. 1편은 세계 전역에서 7억 달러, 2편은 8억3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흥행 수입을 거둬들였다.


SF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시리즈. 그 3편이 29일 개봉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나쁜 녀석들’‘더 록’의 마이클 베이가 연출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는 한국에서 유독 강세를 보였다. 1편과 2편 각각 전국 743만, 744만 관객을 동원했다. 외국영화로선 ‘아바타’ 전까진 최고 기록이었다. 3편도 돌풍이 예상된다. 시카고 도심에서 벌이는 로봇군단의 전투장면에서 돋보이는 3D 효과가 3편의 신무기다. 예매점유율 90%를 넘겼다. 거의 싹쓸이 수준이다.

 구체적 수치를 보자. 2007년 시리즈 1편은 국내에서 5100만 달러(550억여 원)의 수입을 거뒀다. 미국을 빼고 전세계 흥행 1위였다. 2009년 2편에서 미국을 제외한 흥행 1위는 영국(4400만 달러, 476억 여원)이었지만, 2위인 한국(4300만 달러, 465억 여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이 ‘할리우드를 빼고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가장 잘 되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편 개봉 즈음 방한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한국에서 이렇게 잘 되는 이유가 나도 궁금하다”고 했을 정도다. 한국에서 유난히 장사가 잘 되는 ‘트랜스포머’, 왜 그럴까.

 ◆30∼40대 남성 ‘로봇의 추억’=가장 큰 이유는 로봇이 30~40대 한국 남성의 ‘추억상품’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세대는 유년시절 마징가제트·기동전사건담 등으로 대표되는 변신·합체로봇을 가지고 놀았다. 심리학자 심영섭 교수(대구사이버대)는 “전세계적으로 아이들이 ‘슈퍼맨’‘스파이더맨’ 같은 ‘○○맨’인형이 아닌, 변신 로봇을 가지고 노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대표적”이라며 “‘독수리 5형제’의 변종이기도 한 ‘트랜스포머’는 변신·합체로봇에 대한 추억을 지닌 남성 관객을 강하게 파고든다”고 말했다.

 영화저널리스트 최광희씨도 “로봇을 갖고 놀던 추억과 남성성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자동차가 결합하면서 빚어지는 남성 관객의 쾌감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0대 소년 샘(샤이아 라보프)이 범블비를 비롯한 로봇과 교감을 나누는 점도 일본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에겐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다.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건국대)는 “주인공 소년과 로봇의 상호작용은 슈퍼히어로가 대세인 미국 코믹스(만화)에는 없는, 일본 로봇물 특유의 요소”라고 지적했다. 폭력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아빠가 된 성인 관객이 아이를 동반하는 가족영화로 자리매김한”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로봇문화권’인 일본을 한국이 흥행에서 한참 앞섰다는 점. ‘트랜스포머’ 1편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5100만 달러와 3400만 달러, 2편은 4300만 달러와 2200만 달러다.

 ‘트랜스포머’가 국내 스크린의 거의 절반인 1000여 개를 장악하며 어느 시간대에 극장에 가더라도 관람이 가능하도록 한 한국 특유의 상영환경도 작용했다. 수입배급사 CJ E&M은 3편도 1000개 넘는 스크린에 상영할 예정이어서 충무로에 독과점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순수 오락영화의 쾌감=‘트랜스포머’가 할리우드 영화이면서도 내용상 ‘미국색’이 짙지 않다는 것도 국내 흥행을 도운 요인으로 보인다. 영화칼럼니스트 김형석씨는 “미국 문화에 대한 특별한 이해나 사전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다는 게 ‘트랜스포머’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같은 SF블록버스터지만 ‘엑스맨’ 시리즈는 한국에선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미국에선 워낙 유명한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한국 관객들에겐 생소해 ‘심리적 장벽’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종종 지적되던 패권주의 이데올로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도 ‘트랜스포머’의 특징이다. 김씨는 “스펙터클과 물량주의에 강하게 끌리는 한국 관객 성향이 여기에 더해지면서 폭발적 흥행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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