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입사 시험서 왜 떨어졌는지는 알려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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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권희진
경제부문 기자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여러 번 취업에 실패한 김지훈(24)씨는 애가 탄다. 영어점수가 부족한 건지, 자기소개서가 문제인지 도대체 뭐가 잘못 됐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왜 떨어졌는지 궁금해 인사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봤지만 답장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이제는 아예 기대도 안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탈락 이유를 알려주지 않다 보니 구직자들은 엉뚱하게 스펙 쌓기에 매달린다. 실제로 17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면접 탈락 경험이 있는 신입 구직자 23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더니 구직자들은 탈락 사유로 ‘스펙 부족’(15.7%)을 ‘말주변 부족과 오답 제시’(32.8%) 다음으로 높게 꼽았다. 이에 비해 인사담당자들의 절반 이상은 ‘해당 업무에 대한 역량이 부족해 보여서’(53.8%) 탈락시켰다고 답했다. ‘스펙 부족’을 꼽은 인사담당자는 3.8%에 불과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 결과를 봐도 마찬가지다. 기업 인사담당자 229명을 대상으로 채용과 관련해 잘못된 소문에 대해 물은 결과 38.9%가 ‘학력과 학벌이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그러나 이런 속사정을 알 길이 없는 구직자들은 스펙 쌓기에 불필요한 돈을 쓰게 된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구직자가 영어학원 등 취업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은 한 달에 평균 26만9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가에서 필수 스펙으로 여겨지는 해외연수에는 수천만원이 든다. 개인에게도 경제적으로 부담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만약 구직자들이 떨어진 이유를 알았다면 이 중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돈도 돈이지만 더 큰 것이 있다. 구직자들은 정말 기업이 원하는 자질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기업도 좀 더 나은 인재들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업들이 탈락자들에게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기업의 미래에도 결코 좋을 리 없다. 취업 탈락자들은 해당 기업의 잠재 고객이기 때문이다. 한 전자기업에 서류를 넣었다가 이유도 모른 채 탈락했다는 강성한(31)씨는 “떨어지고 나서 그 회사 제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구직자가 어디 강씨뿐이랴.

 권희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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