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11시 대구시 신암동 은천교회 노인대학. 200여 명의 할아버지·할머니가 숨을 죽였다. 가늘게 찢어진 신문지 조각을 들고 ‘얍’ 하는 기합을 넣자 멀쩡한 신문지가 펼쳐진다. 박수가 쏟아진다.
“TV에서 볼 때보다 훨씬 재미있네요. 정말 감쪽같아요.” 한옥이(83) 할머니는 “참 신기하다”며 연방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무대의 마술사는 정기호(54·사진)씨다. 그는 대구 수성구에서 자동차정비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차량을 수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지만 한 달에 두세 차례는 마술사로 변신한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한 정씨는 현대자동차서비스에 입사해 25년간 근무한 뒤 자동차정비업소를 차렸다. 그가 ‘마술사 사장님’이 된 것은 2006년 5월이다.
“제가 노인과 어린이를 참 좋아합니다. 인자한 노인과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이 닮은 것 같거든요.” 정씨는 TV 채널을 돌리다 마술공연을 보곤 무릎을 쳤다. 마술을 배우면 노인과 어린이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곧바로 대구의 한 마술학원에 등록했다. “봉사활동을 위해 마술을 배운다”는 말을 들은 학원 원장이 공연용 비둘기와 소품을 선물했다. 석 달간 연습한 뒤 처음으로 한 보육원 무대에 섰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양로원·보육원에서 100여 차례에 공연했다. 지금도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마술 연습에 몰두한다. “저를 불러주는 곳이 있으니 정말 고맙지요. 열심히 연습해 더 재미있는 마술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대구=홍권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