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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혁명과 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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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원래 회전한다는 뜻인 ‘레볼루션(revolution)’이 혁명이란 의미를 갖게 된 건 16세기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때문이었다. 하늘 아닌 땅이 돈다고 믿었던 그가 지동설을 설파하면서 낸 논문 제목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였다. 이 이론이 워낙 충격적이라 회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revolutio’는 기존 상식이나 체제를 뒤엎는다는 의미로 변질됐다. 이게 영국으로 전파돼 레볼루션 역시 혁명을 지칭하게 된 거다.

 본디 혁명이란 말은 “탕무혁명은 하늘에 순종하고 백성에 응한 것(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이란 주역의 구절에서 나왔다. 탕무는 황음(荒淫)과 폭정으로 악명 높았던 하(夏)나라 걸(桀)왕과 은(殷)나라 주(紂)왕을 타도한 탕(湯)왕·무(武)왕을 뜻한다. 걸왕은 요사스러운 미녀 매희에게 빠져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쫓겨나 굶어 죽었으며 주왕은 연못에다 술을 채우고 고기를 단 나무를 만든 뒤 벌거벗은 남녀를 뛰놀게 했다는, 소위 주지육림(酒池肉林)판을 벌인 폭군이다. 따라서 탕왕·무왕의 궐기는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이며 이를 혁명이라 한다고 주역은 밝힌 셈이다. 이처럼 동양의 혁명에는 긍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혁명과는 다르면서도 자주 혼용되는 ‘쿠데타(coup d’etat)’란 개념엔 은연중 부정적 뉘앙스가 배어 있다. 일군의 집단, 특히 소수 군인들에 의한 체제 전복을 의미하는 쿠테타는 “정부에 일격을 가한다”는 뜻의 프랑스어다.

 흥미로운 건 여기에 들어맞는 영어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필요 시엔 쿠데타란 원어를 그대로 쓴다. 보수적인 영국인들로서는 소수 군인들에 의한 체제 전복이란 격정적인 프랑스인들에게나 있는 일로 여긴 탓이다. 실제로 쿠데타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프랑스인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답게 나폴레옹은 “혁명이란 총검으로 실현되는 개념”이라며 철권정치를 일삼아 원성을 들어야 했다. 물론 쿠데타가 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일본 근대화의 기틀이 된 메이지 유신도 따지고 보면 사무라이 계층의 쿠데타로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오늘이 5·16 50주년이다. 혁명이냐 쿠데타냐 논란이 많지만 어쨌거나 경제발전의 큰 계기였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특히 5·16 주역이면서 독재자란 비판을 받아온 박정희가 최근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건 여러모로 많은 상념에 젖게 한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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