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투자자 손실 초래한 신용평가사, 이대로 놔둘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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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평가사의 임무는 두말할 나위 없이 경비견이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투자자가 사도 되는지를 알려주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자신들이 매기는 신용등급을 통해 투자해선 안 될 기업에는 투자하지 말라고 알려줘야 한다. 그러나 요즘 신용평가사의 행태를 보면 경비견은커녕 방화범(放火犯)으로 전락한 듯하다. 신용등급을 잘못 매기는 바람에 투자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까지 신용평가사로부터 받은 신용등급은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해도 된다는 투자적격 등급이었다. 지난해 12월 이 등급을 받은 이후 이 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은 700억원에 육박했다. 며칠 전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부토건 역시 지난해 11월 투자적격 등급을 받았다. 그 후 한 달도 채 안 돼 7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등급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큰 손실을 입었을 게 자명하다.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기업과 이걸 판매하는 증권사는 이해당사자다. 투자자가 이들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에 기댄다.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서다. 신용등급이 금융시장의 기초 인프라인 건 그래서다. 이 믿음이 무너진다면 금융시장으로 돈이 몰리지 않는다.

 신용평가사는 “기업들이 갚을 의지가 없다는 걸 우리도 몰랐다”고 한다. 재무제표 분석은 정확히 했지만 속마음이야 어찌 알겠느냐는 투다. 궤변이다. 기업을 방문하고 경영진 인터뷰를 통해 정성적(定性的)인 분석까지 해야 한다는 건 신용평가의 기본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공익적인 기능을 해야 할 신용평가사가 장삿속에 몰두한 데 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핵심은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에 공익적인 기능을 어떻게 부여하느냐다. 감독당국은 신용평가제도 전반에 대해 꼼꼼히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사실상 양사 체제인 독과점 구조의 시정도 적극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