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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불법도박 단속권이 반갑지 않은 사감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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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도박중독예방활동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불법 도박 근절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마늘을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자에게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전북 김제 ‘마늘밭 사건’을 계기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위원장 김성이·이하 사감위)의 역할과 단속 분야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감위가 2006년 ‘바다이야기’ 파문 이후 불법 사행 도박을 감시·감독하자는 차원에서 발족됐지만 정작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감위에 불법 도박 사이트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2008년부터 5건 발의됐으나 계속 국회에 계류돼온 사실이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특히 사감위가 법안 검토 과정에서 불법 도박 단속을 업무 범위에 추가하는 데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3일 국회와 사감위에 따르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2008년 11월 사감위의 업무 범위에 불법 사행산업을 감시·감독하는 것을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 2009년 9월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경마·경륜·경정 등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사감위의 매출 총량 규제를 삭제하는 내용을 추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감위의 총량 규제로 인해 해당 사업이 건전한 여가·레저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한 의원과 안 의원은 불법 사행산업 단속을 위해 사감위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관의 권한을 줘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시킨 개정안을 냈다.


지난해 12월엔 민주당 정장선 의원이 역시 불법 사행산업 감시·감독 기능을 사감위에 부여하는 내용과 각 사행산업에서 순매출액의 1%씩을 도박중독예방치유부담금으로 내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선교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소속된 직후인 2008년 5월 현행 사감위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사감위가 불법 도박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으나 사감위 측이 ‘합법 사행산업 관리만으로도 여력이 없다’며 수용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사감위의 이 같은 입장은 같은 해 11월 개정안이 발의된 뒤에도 이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사감위가 한 의원실에 보낸 개정안 검토문에는 ‘수용 곤란 및 개정 불필요’라고 돼 있다.

 한 의원실의 이창근 보좌관은 “사감위는 이 같은 입장을 2년여에 걸쳐 고수해오다 2009년 초에야 ‘전자카드제 시행을 허용해주면 받아들이겠다’고 의사 타진을 해왔다”고 전했다. 한 의원은 “마치 두 가지를 교환하자는 것처럼 느껴져 사감위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자는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행안위 쪽으로 다시 발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감위가 불법 사행산업 관리·감독 업무 수용에 소극적으로 움직여온 것은 결국 힘든 일을 피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14일 오후 문화체육관광부 상임위 업무보고에 김성이 위원장이 출석하면 이 부분을 지적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사감위는 개정안이 통과되는 대로 불법 사행산업을 관리·감독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과거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 처리가 지연된 데는 국회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도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불법 도박 단속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다른 현안들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마늘밭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도박산업 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의 김규호 사무총장은 “국회가 다른 현안이 급하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방치하고 있다”며 개정안의 빠른 처리를 촉구했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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