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사 자격시험 ‘집단 커닝’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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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룬다. 높은 수준의 능력과 함께 도덕적 품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래서 스승이란 뜻의 ‘사(師)’를 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실시된 2011년도 의사 국가시험 실기부문에서 의대생들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유출했다고 한다. 사실상 ‘집단 커닝’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의사로서 능력을 측정한다는 점에서도, 도덕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전국 41개 의과대학 4학년생으로 구성된 ‘전사협’을 통해 유출된 시험문제를 공유했다. 회원이 2700여 명으로 시험응시자 3304명의 82%다. 재수생을 빼면 사실상 예비 의사 거의 모두가 가입한 셈이다. 여기에 실기시험 채점위원으로 선정된 의대 교수 5명이 자교(自校) 학생들에게 시험문제와 채점기준을 알려줬다. 부정행위를 감독해야 할 스승이 앞장서서 커닝을 조장한 셈이다. 이리저리 유출된 문제가 112개 문항 중 103개라니 실기시험에서 96%의 높은 합격률은 의심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격을 얻은 해당 의사들의 실기능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시험 방식도 문제가 있다. 한 시험장에서 하루에 60~70명씩 56일간 치르니 문제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도 먼저 시험을 치른 일부 학생이 ‘시험후기’란 형태로 인터넷에 올렸다. 따라서 이것을 보고 나중에 시험을 치른 학생은 정답을 알고 시험장에 들어선 셈이다. 국가시험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다니 개탄스럽다. 당장 올해부터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도록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같은 ‘집단 커닝’에는 의사란 직역(職域)의 폐쇄성과 의과대학의 합격률 경쟁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선배들이 문제를 외워 복원한 속칭 ‘족보’를 후배들이 돌려보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왔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러니 올해 일반의사 90.7%, 치과의사 94.2%, 한의사 94.7%의 합격률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이들 모두가 인명(人命)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자질과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이뤄져야 한다. 국가시험이 자칫 요식행위로 전락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