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일본 대지진] “죽을 각오로 …” 최후의 50인, 다시 방사능 폭풍 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본지 3월 16일자 2, 3면.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 발전소. 원전을, 그리고 ‘일본’을 구하기 위해 방사능 공포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원전 직원들이 16일 ‘피폭 불사’를 선언했다. ▶<본지 3월 16일자 2, 3면>

일본의 경우 원전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허용되는 피폭 방사선량 한도는 1회 작업마다 100밀리시버트(mSv·방사선량 단위)다. 하지만 대책본부는 이날부터 한도를 250밀리시버트로 올렸다. 피폭 허용수치를 2.5배로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원전 주변에는 이미 시간당 최고 400밀리시버트가량의 피폭 상황인데 기존 허용수치에 매달려 있다간 제대로 된 작업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권고사항에는 “절대 500밀리시버트를 넘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있으나 일본은 그동안 이를 보수적으로 적용해 왔다. 후생노동성은 “어쩔 수 없는 비상사태이므로 ‘예외’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6일 “방사능 오염의 공포와 싸우면서 결사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원전에 남아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핵심 인력은 약 50명. 이들은 피폭 방지를 위해 원피스 형태의 특수 작업복을 입고 산소탱크를 등에 진 채 인공호흡기로 숨쉬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장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을 얼마나 막아내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직원들의 교대 간격은 15분.

 “친구는 내게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아대 ‘건강관리와 대량파괴방어연구소’의 참 달라스 소장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 통제실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자신에게 보내온 e-메일을 이렇게 소개했다.

 원전 현장에서 작업 중인 직원들의 고군분투와 지진 당시의 위기상황도 현장 직원의 증언을 통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11일 오후 2시46분. 후쿠시마 제1원전은 ‘계획대로’ 원자로를 멈추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바로 악몽이 시작됐다. 원전의 비상용 전원을 가동시키려 할 때 10m가 넘는 쓰나미가 덮쳤다. 후쿠시마 원전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상정했던 쓰나미의 높이는 5m였다. 그 두 배가 넘는 쓰나미에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고장났고, 기름탱크도 유실됐다. 이 때문에 원전 사고 시의 1단계 조치인 ‘멈추기’에는 성공했지만 2단계인 ‘냉각하기’와 3단계인 ‘봉쇄하기’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계기들도 대부분 고장났다. 이후 부랴부랴 소방차를 불러 원자로 냉각작업에 나섰지만 곳곳에서 수소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도쿄전력은 3개의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필요한 4대의 소방차 외에 1대를 추가로 불러 사용하고 있었는데, 수소 폭발로 소방차 4대가 고장났다. 다른 소방차가 투입되기까지 물 주입이 일시적으로 완전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이게 치명적 상황을 초래했다.

 당시 1호기에서 작업 중이던 한 직원이 16일 요미우리 신문에 뒤늦게 전한 바에 따르면 지진 직후 천장에 설치돼 있던 금속 배관에서 물이 철철 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직원은 “누군가 ‘이건 보통 물이 아니다. 피하라’고 외치자 모두 출구가 있는 1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원전 밖으로 나오기 위해선 작업복을 벗고 피폭량 검사를 거쳐야만 했는데 피폭량 측정 기기는 단 1대뿐. ‘무서운 물’이 철철 흘러내려오고 여진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직원들은 복도에 일렬로 줄을 서 질서를 지켰다”고 증언했다.

 최근 나흘 새 4번의 폭발이 발생한 데 이어 16일에도 화재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목숨을 건 50명의 직원들 손에 일본의 안전이 달렸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도쿄전력 =1951년 설립된 일본에서 가장 큰 전력회사. 도쿄 지역과 그 주변의 4200만 주민에게 전력을 공급한다. 이번 지진으로 문제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2002년 원전 점검 기록을 허위로 기재하고 안전사고와 결함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사실이 밝혀져 일본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일본은 전국에 10개 민영 전기사업자가 해당 지역의 발전과 송·배전을 담당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