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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에게 고개 숙인 김종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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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부터)이 3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해 질문을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번역 오류에 대해) 문책할 일이 있으면 문책하겠다. 궁극적인 책임은 내게 있다.”

송기호 변호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8일 고개를 숙였다.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국문 번역본에서 영문본과 다른 표기와 표현이 나타나는 등 오류가 잇따라 발견되면서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번역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협상에선 결코 물러설 줄 몰라 ‘검투사’로 불리던 통상 수장의 칼날이 ‘오자’(誤字) 앞에 무뎌진 셈이다.

 그는 “실수한 건 실수한 것”이라면서도 한편으론 “경중을 따져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억울함도 내비쳤다.

 120여 명의 인력으로 구성된 통상교섭본부에 이 같은 수모를 준 건 변호사 한 사람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달 말 한·EU FTA 협정문 한글 번역본의 번역 오류를 지적하고 나섰다. 완구류와 왁스류가 원산지로 인정받기 위한 비원산지 재료 허용 비율이 영문본에는 50%로 돼 있지만, 국문본에선 이를 각각 40%, 20%로 잘못 옮겼다는 것이다. FTA에 비판적인 송 변호사는 “원산지 기준과 관련해 관심 있는 품목 몇 개에 대해 국문을 봤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를 영문과 비교하다 오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면서 민주당이 비준동의안 통과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결국 외교통상부는 수정한 번역본을 국무회의에 재상정해 통과시킨 뒤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류 지적은 이어졌다. 송 변호사는 6일 협정문 번역문 네 곳에 오류가 더 있다고 밝혔다. 국문본에선 외국 건축사가 국내에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요건에 ‘5년 실무수습’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영문본에는 이런 문구가 없다는 것이다. 또 관세 인하 일정을 규정한 유럽 상품양허표에서 냉동 과실의 한 품목이 ‘설탕 100분의 13 초과 포함’으로 돼 있는데 국문본에선 ‘설탕 100분의 13 이하 포함’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외교부는 다시 EU와 외교 공한을 주고받는 형식을 통해 이를 수정하기로 합의했다.

글=조민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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