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한 발의 유혹’과 지옥 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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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본선 8강전>
○·원성진 9단 ●·박정환 9단

제12보(124~132)=백 대마에 대한 총공격이 시작됐다. 죽느냐, 사느냐. 사생결단을 작정한 박정환 9단의 공격이 매우 치열해 원성진 9단은 돌연 지옥의 아수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고통은 모두 백△의 욕심(?)에서 시작됐다. 이 수로 한 발 늦춘 ‘참고도’ 백1로 갔다면 흑은 어쩔 수 없이 2로 차단, 우상 백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구도는 계산의 귀재 박영훈 9단의 진단에 따르면 미세한 대로 백이 우세했다. 원성진 9단이 한 발 더 간 것은 ‘좀 더 확실한 우세’를 원했기 때문이다. 승부사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유혹이고 누구나 넘어가는 유혹이었다.

 고심 끝에 124 붙일 때 125가 뼈저린 공격. 공격 템포를 늦춘 것처럼 보이지만 후방의 약점을 제거함으로써 반격당할 여지를 없애버린 강수다. 사는 길을 찾기 위해 원성진은 온갖 수를 다 궁리한다. 공격군에 비해 타개 쪽은 수를 더 많이 봐야 한다. 그래도 허를 찔린다. 더구나 대마가 몰리는 쪽에겐 저승사자와 같은 초읽기가 시작됐다. 이제 와서 한 발 늦추지 못한 백△를 백 번 후회한들 무엇 하랴. 세상사의 온갖 파란은 바로 그 ‘한 발의 유혹’에서 비롯되는 것을….

눈이 빠져라 판을 보며 원성진은 130, 132로 꼬깃꼬깃 눈(眼)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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