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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우 레이더에 걸린 ‘먹물 교수 애정 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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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앙일보 로비 2층에는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중앙일보 1면의 동판들이 전시돼 있다. 1980년 봄 지방대 동료 교수 사이의 연애 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돌풍전후』를 낸 소설가 김원우씨를 11일 본사에서 만났다. 동판이 전하는 격동의 현대사가 김씨 새 소설의 배경이다. [오종택 기자]


중견소설가 김원우(64)씨가 새 장편 『돌풍전후』(강)를 냈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을 낸 지 3년 만이다. 장편 ‘돌풍전후’와 중편 두 편(‘나그네 세상’‘재중동포 석물장사’)을 묶었다.

 우리 문단에선 드문 스타일리스로 꼽히는 김씨의 문학 30여 년을 꿰는 특징은 낯설지만 진득한 우리 고유어의 향연, 만연체 문장, 그 뒤에 똬리 틀고 있는 서슬 퍼런 비판이다.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김씨의 철저한 비판의식은 소설책 말미 ‘작가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한 군데 이상에는 제법 노골적으로 써놓기도 한 먹물들의 자기희화화는 어제 오늘의, 또 어느 개인만의 독보적인 작의도 아니다. 나로서는 그 주제의식이 장차 자기모멸로까지 나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요컨대 자신을 포함한 먹물 대학교수들의 우스꽝스러운 작태를 적나라하게 까발리겠다는 것. 이럴진대 김씨 ‘주변’이 무사할 리 없다. 언론과 문단, 번잡한 세태 등이 조리돌림 당한다.

 ‘돌풍전후’의 배경은 1980년 ‘서울의 봄’ 전후다.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이 뒤늦게 전해지고, 이성적 인간만 모아 놓았다는 교수사회도 유언비어에 일희일비 춤춘다. 그 중 가장 과격한 버전은 사회 전체를 길들이려는 신군부가 교수 정원의 3할에서 절반까지 솎아낼 계획이라는 것. 진중하지만 염치를 지키려다 보니 왕따 신세인 임 교수, 80년 봄의 야릇한 해방감 속에 동료 여교수와 애정 행각을 벌인다.

 하지만 임 교수가 지탄받을 교수의 대표격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임 교수는 여러모로 자전적인 이 소설에서 작가 김씨의 분신과도 같다. 김씨 특유의 삐딱한 시선이 임 교수의 탈을 쓰고 사사건건 세태를 간섭한다. 새삼 눈길을 끄는 대목이 ‘서울의 봄’에 대한 임 교수의 시각이다. 임 교수가 보기에, 그러니까 김씨 생각에, 서울의 봄이라는 용어 자체가 월급에 목맨 신문기자가 삼류시인적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뒤 유통된 말이다. 봄은커녕 그 전 해인 79년 12월 거사 이후 차근차근 권력을 접수해나가는 신군부의 행보와 동떨어진, 즉 거짓 희망을 품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국난(國難), 교난(校難), 여난(女難) 세 가지가 닥친 상황에서 먹물 지식인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까발리고 싶었다”고 했다. 임 교수와 어딘가 집시를 연상시키는 자유연애주의자 심 교수와의 춘사(春事)는 누군가 귀띔해 준 실례에 착안한 것이다.

 사실 김씨 소설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네 세태와 허위를 다양한 시점에서, 그것도 중문(重文)·복문(複文)으로 어지러운 비선형(非線型)의 긴 문장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씨 소설의 재미는 역설적으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진득하게 읽다보면 뚝심 있는 소설가의 시원스런 세상 비판이 또록또록 살아난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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