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레이건 탄생 100주년 “정치는 타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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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故)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 대통령은 1911년 2월 6일 일리노이주 농촌마을 탐피코에서 태어났다. 탄생 100주년을 눈앞에 둔 지금 미국 전역은 추모 열기로 뜨겁다고 한다. 그는 알츠하이머병과 싸우다 2004년 93세로 타계했다. 미국 의회는 당파를 초월한 레이건 탄생 100주년 기념위원회를 만들어 각종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시사매거진 타임은 “그는 역설(逆說)의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통념을 깨는 역설의 정치를 펼쳤다는 것이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the great communicator)’로 불린다. 재임 시절 야당은 물론 국민과의 소통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이었다. 그런 그를 민주당원이자 전형적 진보주의자인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닮고 싶어한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오바마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휴가 때 레이건의 전기를 읽고 당시 백악관 참모진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커뮤니케이션 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공공리더십센터 교수도 포함됐다.

 오바마가 레이건 팔로어(follower)로 나선 것은 지난달 25일 국정연설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재정지출 삭감과 조세제도 단순화,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역설했다. 모두 레이건이 재임 시절 추진했던 정책들이다. 레이건은 취임 당시 12.5%의 인플레와 7.5%의 실업률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는 널리 의견을 구하고 탁월한 참모들의 말을 존중해 경제를 살려냈다. 1933년 이후 지속돼온 정부 주도의 복지정책 틀도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핵무기는 점진적 감축이 아니라 폐기를 밀어붙이며 군축(軍縮) 레이스의 주도권을 쥐었다. 소련과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대신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몰아 냉전도 종식시켰다. 덕분에 그는 취임 때보다 이임 때 인기가 더 높았다. 미국 역사에 이런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와 레이건뿐이라고 한다.

 숀 윌렌츠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는 정치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타협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현실정치에서 원하던 것을 다 얻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의 리더십은 상식 그 이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탁월한 성공을 거뒀다. 상식을 실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