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與時俱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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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침 토끼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그 나무에 부딪히고는 죽었다. 농부가 횡재했다. 그는 아예 농기구를 버리고 나무를 지키기로 했다. 다른 토끼가 또 부딪히기를 기다린 것이다. 토끼가 다시 올 리 없다. 송나라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을 뿐이다.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주대토(守株待兎)’에 얽힌 고사다. ‘앞뒤 꼭 막힌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인다. 이 말은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글귀를 봐야 그 뜻이 명확해진다. 『한비자』의 뒤 글귀는 이렇다. “많은 사람이 옛날로 회귀하자고 주장하고, 과거의 정치제도를 사용하자고 한다. 오늘에 맞지 않는 정치 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무 기둥을 지키는 농부와 같은 부류다(皆守株之類也).” 한비자가 ‘수주대토’를 얘기한 이유는 결국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혁신하라’는 뜻이었다.

 현대 중국의 교육학자이자 사상가인 차이위안페이(蔡元培·채원배·1868~1940) 선생은 ‘수주대토’의 원뜻을 설명한 뒤 ‘여시구진(與時俱進)’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는 그가 1910년대 쓴 『중국이론학사(中國理論學史)』에 등장한 말로 ‘시대 조류에 맞춰나가자’는 뜻이다. 그는 “현재 중국 사조는 낡아 허물어져가는 것을 부둥켜 안고(抱殘守缺), 스스로 고립돼 전진이 없다(固步自封)”며 “서양 학문을 적극 배워 시대 조류에 맞춰 전진하자(與時俱進)”고 주장했다.

 ‘여시구진’을 정치 슬로건으로 채택한 사람은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전 국가주석이다. 그는 2002년 10월 열린 제16차 당대회에서 “급변하는 세계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黨)도 여시구진의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며 변화를 주문했다. 그 후 중국 고위 지도자들은 개혁을 역설할 때면 꼭 ‘여시구진’이라는 말을 뽑아 쓴다.

 개헌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제정 24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시대 조류에 맞춰 바꿔야 한다는 논리다. 개헌을 제기하는 측은 ‘수주대토’에서 벗어나 ‘여시구진’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정치권은 또다시 고보자봉(固步自封) 하려는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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