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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과 갈비가 다른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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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엊그제 명품 돋보기를 하나 장만했다. 제법 유명한 안경점인데 선착순 150명에게 고급 뿔테를 천원에 판단다. 천원 주고 테를 사서 고급 알을 넣으니 명품 돋보기 탄생. 선착순이라 몸은 고생 좀 했지만 하루 종일 횡재한 기분이었다. 이런 공짜 같은 횡재. 젊었을 때 미국에선 많이 즐겼다. 마켓마다 원가 이하의 물건이 많았던 그곳. 계란 한 줄에 25센트, 3달러짜리 햄버거가 50센트. 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은 있어도 공짜 같은 착각의 즐거움이란. 그런 ‘통큰’ 마케팅. 어디든 늘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햄버거나 계란을 잔뜩 사다가 쌓아놓을 수도 없고, 무조건 싼 것만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돈 더 주고 편하게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통 크게’ 며칠 팔았다고 문 닫은 가게는 못 봤다.

지난달. ‘통큰 치킨’이 생각난다. 닭튀김을 시중 가격의 반값으로 팔다가 판매 7일 만에 사죄하고 성명서까지 내고 판매를 중단해버렸던 대형마켓. 사건의 발단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통큰 치킨’의 판매 행태를 비판하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이란다. 하루 종일 튀겨봐야 400마리가 고작이고, 배달도 안 하고 힘들게 4시간씩 줄을 세운 후에야 한 마리씩 안겨주는 튀긴 닭. 그것이 과연 대기업의 횡포이며 영세상인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됐을까. 튀긴 닭은 트럭에서 직접 조리해 파는 3개에 1만원짜리도 있고 집에 앉아 편히 즐기는 2만원짜리도 있다. 전화 한 통으로 따끈한 걸 먹든지 아님 발품 팔아 저렴하게 먹든지 각자 취향대로 하면 될 것도 같은데. 분식점의 천원짜리 김밥이나 일식집의 2만원 하는 김초밥이나 모두 다 즐기는 나는, 뭔 잘못이 있다고 성명서까지 냈는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많은 돈을 들여 시작했을 ‘통큰 치킨’일 텐데 높은 분의 말 한마디에 꼬리 내려버린 그들을 동정했다. 다른 경쟁 업체의 ‘통큰 피자’는 여전히 잘 구워대고 있는데 유독 그들만 질책받은 것 같아 불쌍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번엔 ‘통큰 갈비’를 내놓았다. 미국산 갈비란다. 청와대 대신 이번엔 보통 사람들의 원성을 듣자 하루 만에 아차 싶었던지 ‘통 크게 한우’를 팔겠다고 말을 바꿨다. ‘통큰 LA 갈비’. 정말 이건 아니다.

구제역 때문에 난리인 지금. 안락사 약이 없어 골짜기로 줄줄이 끌려가 생매장되는 돼지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키운 주인도 울고 TV 앞에 앉은 우리들도 울었다. 가족같이 키워온 한우를 땅속에 파묻기 전날. 소를 안아주며 제일 비싼 사료를 배불리 먹였다는 할머니도, 며칠 후면 명절 대목인데 구제역 때문에 한우를 기피하는 소비자가 생길까 봐 애태우는 농촌 후계자 청년도 봤다. 미국산 갈비. 반값이 아니라 4시간씩 줄 세워 놓고 100원에 팔 수도 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인가. ‘통큰 치킨’과 ‘통큰 LA 갈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소비자이고 이윤추구의 극대화가 기업의 목표란 건 알겠다. 그러나 인간에겐 감성이 있다. 이런 마음까지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지난번의 사죄. 진정성이 의심된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