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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의상의 ‘명품’ 숱하게 디자인,칼라스·파바로티·도밍고도 그의 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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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09면

사진 리보르노 실라베 출판사 제공

60년 가까이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최고의 자리를 지켜 온 안나 안니(Anna Anni). 안나 안니는 2011년 1월 1일자로 오페라의 역사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전설의 인물이 됐다. 그녀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아르마니나 베르사체 같은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극장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디자이너였다.

Obituary-오페라 의상의 대가 안나 안니 (1926~2011)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100편이 넘는 오페라 무대의상을 디자인한 안나 안니는 오슨 웰스(Orson Welles)를 비롯한 프랑코 체피렐리(Franco Zeffirelli), 베페 메네가티(Beppe Menegatti) 등과 함께 작업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를 포함해 옛 소련 태생의 영국 무용가인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 이탈리아의 배우 겸 가수 안나 마냐니(Anna Magnani) 같은 대스타들에게 무대의상을 입혔다. 지금도 막이 올라가는 오페라 ‘카르멘’이나 ‘아이다’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안나 안니의 의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안나 안니는 1926년 토스카나주와 로마냐주의 경계선상에 있는 작은 마을 마라디(Marradi)에서 태어났다. 그 후 피렌체로 옮겨 이스티투토 다르테(Istituto d’Arte)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세라믹이나 장난감, 스카프 등에 그림을 그리다가 후에 극장 공간 장식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사실 그녀는 오페라·연극·영화를 사랑했지만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운명은 피할 수 없었던 걸까? 그녀의 데뷔는 스스로도 인정한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1951년 오슨 웰스가 당시 건축가였던 아리스토 치루치(Aristo Ciruzzi)에게 시카고에서 열릴 2개의 공연에 필요한 디자이너를 찾아봐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웰스에게 안나 안니를 소개시켰다. 그리고 53년 웰스는 벤 존슨의 ‘볼포네’와 18세기 작가 카를로 골도니의 ‘로칸디에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오슨 웰스는 수염이 가득 난 작은 남자였어요. 공연이 시작되자 그는 나를 시카고까지 초청했지만 말도 못하는 나라에 가서 뭘 하나 하는 두려움에 가지 않았죠. 나중에 그는 내게 편지를 보냈죠. 작품들의 성공에 매우 기뻤지만 내가 참석하지 않아 매우 섭섭했다고”라고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후로 프랑코 체피렐리와 함께 ‘투란도트(1956)’,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의 ‘카르멘(1995)’, 도쿄 국립극장에서 열린 ‘아이다(1997)’ 등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베로나의 아레나극장은 프랑코 체피렐리가 감독한 카르멘(1995·1996·1997·1999·2002·2003·2006·2008·2009)과 아이다(2006)를 무대에 올렸다. 우리나라의 소프라노 홍혜경씨가 2002년과 2003년 ‘카르멘’의 미카엘라를 맡아 안나 안니의 의상을 입었었다.

안나 안니는 자신의 작업이 오페라 의상이나 발레복에 더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TV 프로그램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또한 허버트 로스가 감독하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영화 ‘지젤’의 의상도 디자인했다. 1987년 ‘플래툰’과 ‘전망 좋은 방’이 오스카상를 휩쓸었을 때 영화 ‘미션’과 함께 쓴 잔을 마신 사람이 바로 베스트 의상 부문의 안나 안니다. 그녀는 마우리치오 밀레노티(Maurizio Millenotti)와 함께 영화 ‘오셀로’로 노미네이션됐다가 아쉽게도 ‘전망 좋은 방’에 오스카를 양보했었다. 그녀의 최근 영화 작품들로는 프랑코 체피렐리 감독의 ‘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2002)’와 ‘무솔리니와 차 한 잔(Tea with Mussolini·1999)’ 등이 있다.

극장계 발전에 평생을 바친 그녀의 공적은 뒤늦게 인정받았다. 2006년 그녀의 업적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달 세뇨 알라 쉐나-Dal Segno alla Scena(표시에서 무대까지)’가 피렌체 피티궁에서 열렸다. 이 전시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루돌프 누레예프, 카를라 팔라치 등이 입었던 그녀의 의상 80여 점이 전시됐다. 안나 안니는 “난 디자인하기 전 그 역을 맡을 연기자·배우·오페라 가수들의 사진을 내게 보내 달라고 요청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야만 배우들의 의상이나 무대 디자인, 무대 연출, 감독의 자발성, 배우들의 얼굴과 몸까지 디자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디자이너처럼 옷을 누구에게 입힐 것인지를 미리 알았어야 했던 거다.

안나 안니의 수줍음은 그녀의 죽마고우 프랑코 체피렐리의 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항상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 수줍어했다. 프랑코 체피렐리는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항상 뒤에 물러나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안나 안니는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디자인을 제작하기 너무 어려울까 항상 걱정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최고의 디자이너입니다. 그녀와 일을 같이하지 않는 지금 난 더 쓸쓸하고 매우 겁이 납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는 그녀의 빈자리를 바로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을 슬퍼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보통 사람들보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서 빛났던 그녀의 옷들과 그녀의 옷으로 무대에서 빛났던 오페라 가수와 발레 무용수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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