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근영·고현정, “시청률로 함부로 얘기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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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연말 지상파 방송사들의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최우수상을 각각 받은 배우 고현정·문근영씨의 수상 소감이 화제다. 문씨는 “단순히 시청률로 평가 받는 현실 속에서,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열악하다”고 했다. 고씨도 “시청률 갖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달라.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는 진심을 갖고 한다”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발언이라 인터넷 공간에서도 화제였고, “두 사람은 그나마 시청률 위주 시스템의 수혜자 아니냐” “고씨의 말이 훈계조처럼 들린다” 등 뒷말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두 배우의 ‘쓴소리’를 계기로 우리 방송연예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스타급 연기자에 목 매는 드라마·영화 제작 관행이 가장 고질적인 문제다. 스타를 만들고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들여 기존 톱스타를 모셔온 뒤에야 드라마 얼개를 확정 짓고 다른 출연자들을 섭외하고 방송사에 선을 대는 풍토는 분명히 기형적이다. 이러니 선진국과 달리 드라마 제작비에서 배우 출연료 비중이 무려 60%에 육박하고, 보조 연기자나 스태프는 거꾸로 저임금에 허덕이는 사태가 초래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 출연료 미지급을 문제 삼아 외주제작 드라마 촬영 참여를 전면 거부했던 일이 상징적이다.

 시청률에 눈이 어두워 제작사들의 이런 관행을 사실상 부추기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책임도 크다. 스타 섭외에 퍼부은 돈을 벌충하기 위해 제작사는 간접광고의 유혹에 빠지고, 촬영 직전 대본을 고치는 ‘쪽대본’이 남발되면서 치정·억지투성이 ‘막장 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되다시피 했다. 스타급 연기자가 자기 위주로 드라마를 끌고 가려고 멋대로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일마저 드물지 않다. 문·고씨가 문제점으로 지적한 ‘시청률’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악순환 과정이 도사리고 있다. 방송사·제작사들이 탄탄한 스토리나 참신한 기획력 없이 스타에만 기대는 풍토를 개선하는 데 이제부터라도 앞장서야 한다. 정부·정치권도 관련 입법 등 정책적 뒷받침을 서두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