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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피자 … 문제는 가격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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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치킨 가격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논쟁 초기에는 “대기업이 영세사업자의 영역까지 침범하느냐”는 비난이 많더니, 이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유통 가격이 적당한가’로 초점이 바뀐 상태다. 와인 소매점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보니 ‘원가 대비 판매가를 어떻게 정하는가’는 항상 고민거리다.

 문제는 단순히 원가와 중간 마진을 어떻게 정하는가가 아니다. 원가와 판매가격 간의 괴리만 따진다면 유명 커피 체인점이나 명품 브랜드의 비싼 가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되레 그 높은 판매가격 때문에 일부러 구매하는 소비자층도 존재한다.

 수입 쇠고기 문제가 대두됐을 때 세계적인 주방장 한 분이 “한우의 육질이 세계 어떤 나라의 고기보다 좋은 만큼 비싸게 팔면 그만이지, 왜 가격 경쟁력 걱정을 하느냐”고 반문하던 일이 생각난다. 실제로 쇠고기 시장은 다양한 가격대로 분화된 상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치킨 시장도 저가와 명품 고가 시장으로 양분될 것이다.

 커피·햄버거·피자 시장은 이미 어느 정도 구분이 이뤄졌다. 1000원짜리 저가 햄버거 가게가 있는가 하면 개당 1만5000원을 호가하는 수제 고급 햄버거 가게도 있다. 이들은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제품 속에서 여러 가지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 그것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 선택권은 더 넓어지게 된다.

 시장은 소비자의 잠재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여기서 살아남는 길은 단순히 가격만이 생존과 성장의 핵심 요인은 아니란 점을 아는 것이다.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가격보다 전문성이나 상품 구색의 차이, 질 좋은 서비스가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사업 영역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고도 위험하다. 이미 세계적인 무한경쟁의 시대다. 국내 시장에서 자국 기업끼리 규모에 따라 사업 영역을 규제해 봐야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내 기업이 진출하지 않는 분야라 해서, 해외 기업까지 그래주리란 보장도 없다.

 자율경쟁에 맡겨두면 기업들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한다. 축적된 자본이 많은 대기업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보다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된 분야에선 발 빠르게 철수하는 것 역시 대기업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들이 곤란을 겪고 문을 닫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차별화할 수 있는 자체 경쟁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도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의 식당이 개업하기가 무섭게 문을 닫는다. 대기업이 특정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생존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얘기다.

 물론 대기업에 무작정 특정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권한과 명분을 주자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게임의 룰과 그 룰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고, 반칙자를 벌하는 시스템만 제대로 가동되면 된다.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히 현명하다.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의 제품을 찾건, 아니면 비싼 값을 내더라도 서비스가 좋은 제품을 구매하건 모든 선택은 소비자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소비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충실하다. 구태여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일방의 잣대를 강요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영세상인과 기업 모두에 고객, 즉 소비자는 왕이다.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얼마나 정당성을 인정받느냐는 시장에서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는 단순히 가격이나 마진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가 뭘 추구하는지를 미리 헤아려 총체적인 수준에서 소비자의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소비자를 만족시킨 기업이나 소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남아 성장한다는 게 시장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