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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정의로운 평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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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02면

평화는 전쟁의지로 생산된다. 결전의지는 평화를 보호·관리한다. 전쟁과 평화의 관계는 기묘한 역설(逆說)이다. 영웅적 리더십은 그런 관계에 익숙하다.

미국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그런 리더십의 상징으로 기린다. 그는 미국의 내전(남북전쟁·1861~65년) 때 대통령이다. 그의 이미지는 관용과 통합이다. 그것은 맞으면서 틀린다.
링컨은 잔혹했다. 남부와의 내전은 장기화됐다. 전사자 62만 명. 그 숫자는 20세기 전쟁(제1·2차 세계대전·한국전·베트남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협상 평화론이 참상 속에서 등장했다. 링컨은 거부한다. 그의 평화와 전쟁관(觀)은 명쾌했다. 협상으로 얻은 평화는 어설프다. 시간이 흐르면 분란을 다시 낳는다는 게 그의 확신이었다.

그 냉혹한 신념은 전선에서 실천된다. 북군 장군 윌리엄 셔먼은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를 파괴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다. 목표는 남부 시민의 전쟁의지를 꺾는 데 있었다. 동시에 응징의 집념을 과시했다. 남부는 항복했다. 링컨은 관용을 베풀었다. 전범(戰犯) 없는 전쟁으로 마감했다. 위대한 반전(反轉)이다.

링컨은 정의로운 평화를 고수했다. 상대방의 항전의지를 꺾어야 진정한 평화가 온다. 정의로운 평화가 지혜로운 평화다. 워싱턴의 백악관 왼쪽에 셔먼의 동상이 있다. 동상 받침대에 이런 글귀가 새겨 있다. “전쟁의 합법적 목표는 보다 완벽한 평화(more perfect peace)다.”

‘완벽한 평화’는 20세기 베트남전쟁에서도 등장한다. 월맹군(북베트남)을 이끈 국방장관 보응우옌잡은 완벽한 평화를 추구했다. 그는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75년 미군을 패퇴시켰다.

보응우옌잡의 전략적 천재성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그는 전쟁의지를 주목했다. 그는 미군과 정면 대결하지 않았다. 여론의 미묘한 집단심리를 공략했다. 초점은 전쟁의지의 해체였다. 68년 구정 공세는 그 전략의 실험이다. 월맹군은 현장 전투에서 졌다. 심리전에선 압승했다. 미국대사관이 공격당하는 충격적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미국의 참전의지가 꺾이면서 분열했다. 염전(厭戰) 분위기는 전염병 같다.

보응우옌잡(99세)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의 영웅적 회고는 이렇다. “구정 공세의 전략은 포괄적이었다. 군사적이면서도 정치·외교적이었다. 우리는 미군을 섬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미군의 전쟁의지를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워싱턴 덜레스공항 근처의 ‘스티븐 우드바르-헤이지’센터.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이다.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B-29 에놀라 게이, 우주왕복선, 미사일, 다양한 전투기가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미국 군사과학 기술의 성취에 압도당한다. 그 공간 구석에 베트남전 노획물이 있다. 낡은 타이어를 잘라 만든 조악한 군화다. 월맹군은 발에다 그 초라한 신발을 끈으로 묶고 행군했다.

폐타이어 군화와 우주왕복선은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돈과 최신 무기를 가진 군대가 형편없이 가난한 군대에 역전패했다. 보응우옌잡은 역사의 교훈을 거론한다. “어떻게 단결하고 의지를 길러야 하는지를 아는 국민은 어떤 침략자도 물리친다.” 전쟁의 승패는 오묘하다.

그 시절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파리 평화협정의 주역이다. 협정 2년 뒤 월남(남베트남)은 망했다. 키신저의 기억은 이렇다. (지난 9월 말 미 국무부 세미나) “미국은 타협(compromise)을 원했고 하노이(월맹)는 승리를 원했다.” 타협하는 평화는 위선과 거짓으로 썩는다. 평화의 슬픈 숙명이다.

우리 군은 연평도 사격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은 타격 협박을 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의 의지 대결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적 단합과 결전의지를 관리해야 한다. 무장한 평화만이 정의로운 평화, 지혜로운 평화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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