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음 자잘하면 온갖 것이 병, 마음이 커야 두루 통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6호 08면

수기(修己)의 아홉 조목이 끝났다. 율곡은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 리더십의 핵심이 ‘국량(局量·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 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서 ‘덕량 넓히기(懷德量)’의 챕터를 따로 세웠다. 현대어로는 ‘스케일’이나 ‘포용력’, 나아가 ‘비전’이나 ‘미션’에 해당하겠다.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 성학집요 <21>-회덕량(懷德量),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는 큰 바다의 포용력

1. 평정심
사람의 국량은 들쭉날쭉하다. 되나 말들이 국량이 있고, 가마니 크기의 국량이 있는가 하면, 더 크게 강하(江河)의 국량에서 천하(天下)의 국량까지 있다.위(魏)나라의 등애(鄧艾·?~264)는 칠십 원로의 나이, 삼공의 지위에도 평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촉을 멸망시키는 데 공적을 세우고는 마음이 ‘움직이는 바’가 있었다. 동진(東晋)의 사안(謝安·320~385)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조카가 (전진왕) 부견을 깼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신발 굽을 부러뜨렸다 한다. 역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왜 하필 왈, 국량인가. 횡거는 말한다. “마음이 크면 백물(百物)이 두루 통하고, 마음이 자잘하면 온갖 것이 다 병이다(張子曰, 心大則百物皆通, 心小則百物皆病).” 율곡은 말한다. “협량한 자는 포용하지 못한다. 모든 병통은 마음의 협애함으로부터 온다(量狹者, 不能容物, 從狹隘上, 生萬般病痛).” 그러므로 ‘두터운 포용력, 자연스럽고 광대한 기상(渾厚包涵從容廣大之氣象)’을 길러야 한다.

2. 겸양
국량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관건은 자의식을 내려놓는 것. 『예기』에서 공자는 말한다.
“공적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잘못은 자신이 받는다(善則稱人, 過則稱己).” “군자는 자신의 유능함으로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고, 타인의 무능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이처럼 겸양은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거나 우쭐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 『상서』의 말은 어딘지 『노자』의 공성신퇴(功成身退)를 닮았다. “선(善)을 소유하려 들면, 결국 읽고 만다. 유능함을 자랑하면 그 공적을 말아먹을 것이다(有其善, 喪厥善, 矜其能, 喪厥功).”

논쟁에서 자기주장을 우기는 것도 협소한 국량의 결과다. 식견이 아직 얕아 그렇다.
잘난 척 말고(不矜), 자랑하지 말랬더니(不伐), 겸양을 가장하는 사람이 생겼다. “술에 취하면 더욱 삼가고 조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물론, 취해 소리 지르거나 주사를 부리는 사람보다야 낫겠지만…. 또 지위가 높아지면 더욱 몸을 낮추는 사람이 있다. 권력에 취해 함부로 교격(矯激)해지는 사람보다야 낫겠지만, 그 역시 억지라 귀한 것이 못 된다.”

3. 관용과 포용
국량은 어려움과 난관을 참고 인내하는 힘이다. “받아들이라. 참아야, 일을 성취할 수 있다.” 공자는 말한다.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플랜을 그르친다(孔子曰, 小不忍, 亂大謀, 必有所忍, 而後能有所濟).” 국량은 또한 포용력이고, 밖으로 타인에 대한 관용의 힘이다. “다른 사람의 완고함에 분통하지 마라. 또한 완전한 인격과 능력을 갖추라고 윽박지르지도 말고(無忿疾于頑, 無求備于一夫).” 포용과 관용은 ‘빛’이 아니라 ‘흐릿함(晦)’의 덕성이다. 언제나 ‘밝음(明)’을 말하던 유교는 여기서 정반대의 덕성을 충고하고 있다. 『주역』은 여명의 괘(明夷)에서 말한다. “군자가 백성을 대함에, ‘어둠’을 씀으로써 오히려 밝아진다.”

유교의 주문은 노장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정자는 부연한다. “지나치게 살피고 따지면 포용과 화해를 다친다. 사람들의 의심은 커지고 불안이 자랄 것이다(若自任其明, 無所不察, 則無寬厚含容之德, 適所以爲不明也).” 도덕을 강요하고 책임을 촉구하는 하늘(天)의 덕성 못지않게, 무한히 베풀고 포용하는 ‘대지(地)의 덕’이 필요하다. 『주역』은 말한다. “땅의 형세가 어머니(坤)이다. 군자는 이를 닮아 두터운 덕으로 사물을 싣는다(易曰, 地勢坤, 君子以, 厚德載物).” 그 덕은 “사물에 생명을 주고 번성시킨다(含弘光大, 品物咸亨).”

4. 학문이 국량을 넓힌다
율곡은 ‘작은 국량’의 병폐를 이렇게 경계했다. “국량이 작은 자들에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편협(偏曲)’, 둘은 ‘자만(自矜)’, 셋은 ‘호전(好勝)’입니다. 편협한 자는 자기 관심에 갇혀 공적 마인드로 사태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만은 작은 성취에 만족하여 더 큰 덕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호전의 비대한 에고는 잘못을 꾸미고, 자신을 비워 다른 사람을 쫓지 못하게 막습니다.”이 세 병통은 결국 ‘사적 에고(私)’로 집약된다. 한 뿌리에서 나온 세 아들인 셈이다.

그럼, 이 사적 에고를 어떻게 다스려 나갈 것인가. ‘학문(學)’이다. “학문이 진전되면 덕량도 확대됩니다. 타고난 자질의 미오(美惡)는 상관없습니다(治私之術, 惟學而已, 學進則量進, 天資之美惡, 非所論也).” 그 노력의 끝에 사적 에고가 완전히 탈각하면, “요순처럼 천하를 얻고도 자기 것인 줄 모르고, 문왕처럼 도를 성취하고도 아직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는 것.

율곡은 선조에게 제발 ‘덕량’을 넓혀주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나라의 안녕과 번영이 거기 달려 있다는 것. 탕평(蕩平)의 위대한 공정성도 사적 호오(好惡)를 넘어서는 이 바탕 위에서 자랄 것이었다.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스스로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그는 바다가 되어야 한다.”


한형조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