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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거울, 그 거울로 ‘참나’ 를 보는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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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현각 스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경전은 저 창밖의 자동차 소리다. 바로 이 웃음 소리다. 찰나, 찰나, 찰나가 얼마나 완벽한 순간인가. 이 경전에는 나를 참나로 컴백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유명한 푸른 눈의 현각(46) 스님을 14일 만났다. 독일 뮌헨에서 선방을 꾸리고 있는 그가 6개월 만에 한국에 왔다. 13~14일 서울 방배동 BTN불교TV 내 무상사에서 ‘심우도(尋牛圖)’를 주제로 법문(BTN불교TV 1편 20일 오후 2시30분, 2편 24일 오후 8시50분 방영)을 했다. 450여 명의 청중이 법당을 가득 메웠다. 다들 고개를 쭉 내밀고 ‘나의 소’를 찾고 있었다. 현각 스님은 동자가 소를 찾는 10개의 그림을 하나씩 보여주며 수행의 과정, 마음의 이치를 풀어갔다.

 법상(法床)에 오른 현각 스님은 스승인 숭산(1927~2004) 스님과의 출가 전 첫만남을 꺼냈다. “저는 제 이름을 말하고,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어떤 공부를 했고, 구시렁 구시렁 얘기했다.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 사상을 처음 알게 됐고, 지금은 누구에게 관심이 있고 어쩌고 등등 말이다.” 그런데 말없이 듣고 있던 숭산 스님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너는 누구냐~아?”

 현각 스님은 깜짝 놀랐다. “그때 정말 무서웠다. 진짜 굶주린 호랑이 앞에 제가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제 이름은 누구입니다 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숭산 스님은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건 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것 받기 전에는 이름이 없었다. 너는 누구냐~아?”

 현각 스님은 충격을 받았다. 멍했다. 그래서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숭산 스님이 말했다. “그것을 공부해라. 그것만 공부해라. 이제 책은 그만 해!” 돌아보면 현각 스님은 그때 자신이 날카롭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칼을 들고 다니는 아이였다고 했다. “숭산 스님은 그 칼을 제가 스스로 제 목에 겨누게 했다.”

 현각 스님은 법상 옆의 ‘심우도’ 그림을 가리켰다. 7번째 심우도, 소가 사라진 그림이다.

 “여자들이 화장할 때, 남자들이 면도할 때 거울을 본다. 유리를 보는 게 아니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거다. 불교도 거울과 같은 거다. 불교를 보는 게 아니라, 불교를 통해서 참나를 보는 거다. 부처님 가르침을 좇아 정말 잘 공부하면 불교가 사라진다. 소가 사라진다. 불교를 공부하든, 공부하지 않든 참나가 내게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법회를 마친 현각 스님과 마주 앉았다. 그에게 ‘소’를 물었다.

 -현대인은 바쁘다. 왜 소를 찾아야 하나?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의 답을 아는가. 모르니까 소를 찾는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초청장을 받았나. 아니다. 이 세상에 오고 싶느냐고 누가 물어보았나. 아니다. 우리의 존재는 그렇게 앞뒤가 맞지 않다. 그런데 태어나서 죽기까지 왜 사는지, 왜 돈을 버는지, 왜 고생하는지, 왜 병에 걸리는지도 모르고 산다. 그래서 이유를 찾는 거다. 그게 소를 찾는 거다.”

 현각 스님은 갑자기 방의 불을 끄라고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불을 껐다.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현각 스님은 일어나서 걸었다. 그리고 소파에 ‘쿵!’하고 부딪혔다. 다시 불을 켰다. “이런 거다. 소를 모르면 어두운 방에서 걷는 거다. 결국 주위와 부딪치고 상처도 주고 받게 된다. 그런데 소를 찾으면 밝은 방에서 걷는 것과 같다. 세상의 소리, 냄새, 맛을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현각 스님은 이튿날 순천 송광사의 금강산림법회에 법사로 참석한다고 했다. “가장 마음에 두는 경전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는 창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바깥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다.” 경쾌한 대답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바로 이 웃음 소리다. 찰나 찰나 찰나,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전이다. 이 경전에는 나를 참나로 컴백시키는 힘이 있다.” 현각 스님은 20일 출국할 예정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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