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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워 꿈 속에도 눈물로 산 … ” 탈북 국군포로 60년 만에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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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월 김씨가 박선영 의원에게 보낸 편지.

지난 4월 초 탈북해 제3국의 한 재외공관에서 보호를 받아온 80대 국군포로 김모(84)씨가 국내로 송환된 것으로 2일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최근 제3국 정부와 교섭을 거친 결과 해당 정부가 김씨의 송환을 허가해줬다”며 “이에 따라 이번 주초에 김씨가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제3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김씨의 송환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 4월 초 탈북했으나 제3국 정부가 국내 송환을 허가해주지 않아 제3국 한국 영사관의 보호를 받아왔다. 그는 지난 9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을 통해 “고향이 그리워 꿈속에서나 생시나 60년 세월을 흐느껴 울며 살았다”는 내용의 20장 분량의 편지를 국회에 보냈다. 박 의원이 당시 이 영사관을 방문해 직접 전달받은 편지에 김씨는 지난 60년의 역경과 송환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빼곡히 담았다. 김씨는 “북한에서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숱한 제약을 받으며 살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를 이해한 자식들이 탈북을 도와줬다”며 “자식들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북한에서 사망 신고까지 했다”고 썼다. 이와 함께 김씨는 박 의원을 통해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탄원서도 전달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김씨는 탄원서에서 “고향에서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냈고 전쟁이 나던 해 혼인했던 처는 내 묘지 앞에서 목 놓아 울고 친정으로 갔다고 한다”며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이산가족이 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당시 박 의원은 “김씨는 편지 전문을 국회에서 꼭 낭독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국군포로 송환 문제는 ‘조용한 외교’가 아니라 유엔 등을 통해서라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김씨가 머물고 있던 제3국 정부와 교섭을 적극 추진해 그의 국내 송환이 이뤄졌다.

 김씨는 2008년에도 탈북했으나 한국 입국이 여의치 않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이번에 며느리와 함께 두 번째 탈북을 감행했다.

김씨는 스물네 살이던 1950년 10월 입대해 이듬해 강원도 인제·양구 인근 전투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가 사망한 줄 알고 군번줄만 회수한 후 퇴각해 남한에선 전사 처리까지 됐다. 그러나 김씨는 며칠 뒤 의식을 회복해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1953년 중립국 감독위원회가 북한을 돌며 국군포로를 조사했지만 북한이 국군포로들을 평남 양덕군 맹산 골짜기에 숨겨 포로 교환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후 평양 순안비행장 건설 노역에 동원됐다고 한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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