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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보고서'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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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들어 '2020'이 화제다. 세종연구소와 같은 관변 연구소들은 물론 대통령 직속 각종 위원회에서도 2020년을 내세운 각종 전략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 모든 전략 보고서는 결국 예측 가능한 미래에 한국이 직면할 도전과 기회들을 어떻게 대비하고 처리할 것인지, 효율적인 전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 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만이 이러한 2020 플랜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세계의 주요 국가들도 2020년을 목표 기점으로 삼은 국가 전략 플랜들을 다양하게 준비하거나 발표하고 있다.

최근 주요 에너지 생산국으로서 국제적 영향력을 높여 가고 있는 러시아는 2020 전략의 일환으로 이미 2004년에 '국가에너지 전략 2020'을 입안했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의 경제 성장과 국가 영향력 제고를 위해 에너지 등 전략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지정학.지경학적 측면까지 감안해 만들어졌다.

중국은 1921년에 창건된 중국 공산당이 2020년 사실상 100주년이 되기 때문에 2020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에 따른 각종 시뮬레이션 페이퍼가 나오고 있다. 일본 또한 민간.정부 할 것 없이 90년대 초부터 2020을 상정한 각종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예측 보고서라면 역시 미국을 따라갈 곳이 없다.

97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10년의 세계 조류(global trends)'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데 이어 2000년엔 '2015년의 세계 조류'를 발간했고 2004년 12월엔 지구의 미래에 대처하기 위한 2020 프로젝트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0 보고서가 워싱턴 DC 지역에서 벌어진 세미나와 지식사회 담론들의 주요 내용 및 경향을 정리해 담았다면 2015 보고서는 세계의 변화에 핵심적 영향을 미칠 7개의 변화요인으로 ▶인구▶천연자원과 환경▶과학기술▶세계 경제 및 국제화▶미국 및 세계의 관리능력(governance)▶미래의 분쟁▶미국의 역할을 선정한 뒤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에 미국 내 전문가들만이 참여해 진정한 글로벌 예측 보고서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2004년 12월 다른 나라의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2020'보고서를 만들었다. 또한 과거의 보고서들이 향후 예측되는 변화의 파장만을 다뤘다면 이번 보고서는 이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대처법을 보다 다양화했다.

1년여의 작업 기간과 1000여 명 이상의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나온 보고서는 지정학 분야의 주요 변화로 아시아의 부흥과 함께 러시아.인도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 수요의 급증 및 기술분야의 혁신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중 러시아는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에너지와 원천기술에 있어 1, 2위를 다투는 강대국이다. 인도 역시 정보기술(IT)과 인구를 바탕으로 급격히 파워를 키워가고 있다.

한국의 2020 전략 보고서 작성 작업은 과연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한국의 보고서들은 대부분 박사 등 학자 위주로 작성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최소한 이러한 작업에는 지역 전문가들, 현장에서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관변 연구기관 중엔 러시아나 인도 등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 인력이 거의 없다. 대부분 미.일 편중이다. 지역학연구지원사업 사무국을 맡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도 단 한 명이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외예측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