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동성애는 해로운 것인가” … 80년 전에도 논란 벌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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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별건곤』 1930년 11월호에 실린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 첫 페이지. 이 글에서는 교육가 황신덕, 의사 허영숙과 이덕요 등 당대 인텔리 여성들이 자신의 사진과 실명을 당당히 공개하며 동성애의 경험을 밝히고 있다.

1920~30년대에도 동성애는 종종 나쁜 것으로 취급되었다. 1929년 11월 3일 중외일보의 칼럼 ‘성교육으로 본 동성애의 폐해’에서는 동성애에 빠지면 “속살거리고 편지질하고 심하게는 애인과 애인이 남의 눈을 피하여 향락하기 위해 외출이 잦게 되고, 또는 활동사진관 같은 유흥장으로 출몰하게 되어 시간과 물질로써 받는 폐해가 크게 되고, 또는 사랑하는 표적을 물질로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피차에 선물을 하느라 집으로부터 얻는 학비를 그곳에 쓰고, 결과적으로 남성들이 오입에 미쳐서 동대서취(東貸西取)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과 똑같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성애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열렬하다”며 여성들의 동성애를 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당대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보인다. 이 글에 언급된 동성애의 폐해는 사실 사랑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동성 간이건 이성 간이건 연인들이 연애에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것이 동성애의 폐해일까.

 그 의문 해결의 실마리는 동성애를 남성들의 오입과 비슷한 것으로 본 점, 그리고 여성들의 동성애가 더 심각하다고 한 점에 들어 있다. ‘과거에는 일부종사(一夫從事)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던 여성들’까지, 동성애에 눈을 떠 남성들처럼 연애를 위한 소비와 향락에 빠지게 된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동성애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단지 그 열정이 과도할 때 생기는 부작용들을 문제삼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동성애라는 것이 정신적인 때까지는 별로 해 될 것도 없지만 생리적으로까지 진행되면 이성 간의 그것과 똑같은 생리작용이 일어나서 몸에 해가 미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적인 사랑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것이 동성애라서 일어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당대의 동성애 관련 기사 대부분에서 비슷하게 확인된다. 동성 연인의 정사(情死)나 치정(癡情) 사건이 이성 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종종 발생했고, 이것이 큰 이슈로 취급되기는 했다. 그러나 “감히 동성끼리 연애를?”이라고 반문하진 않았다. 그래서 당시 유명 인사들은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다(‘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 『별건곤』 1930. 11).

 최근 동성애를 다룬 한 TV드라마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무정』의 작가 이광수가 쓴 첫 소설 『사랑인가(愛か)』(1909)가 동성애를 다루었듯, 사실 그동안에도 동성애는 한국에서 금기시돼 온 소재가 아니었다. 한국 근대 초기의 현실, 언론, 문학에서 동성애는 그저 사랑의 여러 종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