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앞둔 LG전자 ‘정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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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LG전자가 폭풍전야다. 지난 1일 구본준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면서 핵심 사업인 TV와 휴대전화 사업본부 수장이 바뀐 뒤 한 달 가까이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LG전자 임직원들의 표정은 사뭇 달라졌다. LG전자가 입주한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과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빌딩은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초미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다음 주 나올 3분기 경영성적표와 외국인 부사장 등 경영진의 인사 폭이다. 마케팅 못지않게 연구개발(R&D)에 무게중심을 두려는 움직임도 주목된다.

 ◆바닥권 하반기 실적=증권가에선 28일 나올 LG전자의 3분기 영업실적이 적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합쳐서 매출의 60%를 점하는 TV·휴대전화의 수익이 동반 악화된 때문이다. 3분기는 물론이고 4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LG전자의 실적이 바닥을 치고 올라올 시점이 언제일까도 오리무중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새 사령탑의 새로운 경영스타일과 윈도폰7 등 전략모델의 선전효과가 얼마나 빨리 주효하느냐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4분기 개시일인 이달 1일 새 CEO가 부임한 만큼 3분기에 웬만한 부실을 다 털어 넣을 경우 적자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CEO는 열공 중=구 부회장은 취임 이후 언론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LG전자의 위기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가닥을 잡은 다음 얼굴을 내밀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취임 이후 국내 현장을 둘러보고 각 부서의 업무보고를 릴레이식으로 받았다. 국내 생산현장인 경기도 평택과 경북 구미, 경남 창원 공장을 둘러보고 “1등을 합시다. LG전자의 옛 명성을 되찾자”고 임직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다음 달 초까지 사업본부장들과 LG전자의 내년 사업전략을 수립한 뒤 다음 달 중순부터 구본무 LG 회장과 그룹 컨센서스 미팅(CM)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임 남용 부회장의 주도로 영입한 외국인 임원들의 거취도 주목된다. 연말에 계약이 만료되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더모트 보든 부사장은 최근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1월과 3월 각각 계약 기간이 끝나는 최고구매책임자(CPO) 톰 린튼 부사장과 최고공급망책임자(CSCO) 디디에 셰네보 부사장도 비슷한 길을 밟지 않을까 전망된다. 구 부회장은 이달 초 임원들과의 한 만찬에서 “외부 영입 임원이라도 성과를 내고 LG 문화에 녹아들 수 있으면 함께 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R&D 강화=남 부회장이 마케팅을 강화했다면 구 부회장은 R&D 쪽을 보강할 생각이다. 그는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스) 사업본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휴대전화 연구인력을 현재 6500여 명에서 1000명 정도 더 늘리라”고 지시했다. 이와 함께 구 부회장은 전 부서의 보고체계와 협업체계를 좀 더 단순화하는 조직 개편을 구상 중이다. 기존의 LG전자 조직은 미국 P&G의 매트릭스 구조를 본떠 2중, 3중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장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회사에서 종종 나타나는 책임 회피가 많았다는 것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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