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상한 문제’ 학생들 신고할 때 EBS는 뭘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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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다고 돈은 돈대로 쓰고, 잘못된 문제 푸느라 시간은 시간대로 날렸다.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들고 수능에 70%나 낸다고 하나?”(수험생 이모양의 EBS 홈페이지 글)

 EBS 수능 교재가 오류투성이라는 본지 보도가 나간 22일, EBS 홈페이지와 수험생 인터넷 카페에는 EBS를 성토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본인을 ‘장수생’이라고 밝힌 이신영씨는 “문제 오류를 신고하면 EBS는 참고하겠다고만 하고 ‘옳다 그르다’ 말도 없이 덮어버렸다”며 “EBS는 전국 65만 수험생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서·참고서에다 EBS 교재 공부 부담까지 안고 있는 수험생들은 “EBS가 수험생들을 고자세로 대했다”고 비판했다. 본지 보도로 논란이 커지자 EBS는 이날에서야 ‘땜질’ 대책을 내놓았다. EBS가 일반 사기업이었다면 벌써 시장에서 퇴출됐을 일이다.

 취재 결과 EBS의 교재 품질 제고 노력과 수험생에 대한 서비스 수준은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지난해 말 문제 개발이 끝난 교재들은 수험생에게 오류를 일찍 알릴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EBS는 홈페이지 구석에 정오표를 올린 게 전부였다. 수능이 한 달도 안 남은 최근에도 문제를 바로잡고 있었다. 그동안 수험생들은 오답이 정답인 줄 알고 공부한 셈이다.

 이런 혼란의 책임은 치밀한 준비 없이 EBS·수능 70% 연계 방침을 밀어붙인 교육과학기술부에도 있다. 교과부는 EBS가 사교육을 잡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홍보하며 EBS의 영향력을 키워줬다. 그 덕분에 EBS는 가만히 앉아서 교재를 603억원어치나 팔았다.

 EBS가 책 장사에만 열을 올린 사이, 학원들은 오답과 오류를 바로잡은 부교재를 만들어 재미를 봤다고 한다. 학원을 다닌 수험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교과부와 EBS를 믿었던 수험생들은 엉뚱한 문제에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됐다. EBS 교재를 수업시간에 가르친다는 한 고3 교사는 “중하위권 학생들은 EBS 문제와 답을 달달 외우기도 한다”고 전했다.

 수능·EBS 연계 정책을 밀어붙인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학원 대체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부 인터넷강의 업체 매출이 줄기는 했지만 EBS 교재도 학원이 더 잘 가르친다면 이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교과부의 포퓰리즘 정책과 EBS의 무책임한 경영이 수험생을 학원으로 내모는 불쏘시개가 될까 걱정된다.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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