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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 갑부에서 철창 속으로 '쓰쓰미 왕국'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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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쓰쓰미 왕국'이 무너지고 있다. 쓰쓰미 요시아키 (堤義明.70.사진) 세이부 철도그룹 전 회장은 한때 세계 최고의 부호였다. 그러나 4일 내부자거래 등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검에 구속됐다. 세이부 철도의 상장폐지에 이은 오너의 구속으로 그룹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 전성기=쓰쓰미는 1957년 대학 졸업 직후 중의원 의장을 역임한 아버지 야스지로(康次郞)로부터 세이부 그룹의 지주회사를 물려받았다. 세이부 그룹은 도쿄 외곽의 사설철도와 프린스 호텔.리조트 체인 등을 주력으로 성장했다.

그의 전성기는 일본의 거품경제 시기였다. 1980년대 소비호황과 레저붐,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세이부 그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쓰쓰미의 개인 재산도 210억 달러까지 늘었다. 87년부터 4년 연속 미국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최고 부호에 뽑혔다. 당시 일본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선 세이부 그룹의 스키장.리조트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

지자체장이 레저시설 유치를 위해 쓰쓰미를 방문하는 것을 '쓰쓰미 참배'라고 부를 정도였다.

쓰쓰미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체육계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80년대부터 최근까지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회장.명예회장을 지냈다.'일본의 돈 킹'으로 불렸다. 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를 인수해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키웠다. 쓰쓰미의 경영스타일은 합의를 중시하고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본 전통적 기업 풍토와는 다른 상명하복 방식이었다. 재계에선 "카리스마와 결단력.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란 평가를 받았다.

◆ 파멸=지나친 독선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세이부는 종업원 3만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쓰쓰미 왕국'으로 불렸다. 그는 제왕이었다. "여름 휴가를 가려면 간부직을 내놓아라"고 부하들을 몰아붙였다. 미국 대통령과 같은 기종의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다녔다. 그가 타는 열차는 객량 한 칸을 통째로 세내 바닥까지 반질반질하게 닦아야 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동원한 각종 편법 경영, 폭력배와의 유착관계, 공사 구분 없는 권한 남용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쓰쓰미의 파멸은 도쿄증시의 디지털화 계획이 발단이 됐다. 상장기업의 종이 증서를 없애고 전자화하는 과정에서 쓰쓰미는 당국에 주식 소유상황을 허위신고했다가 적발됐다. 그는 40여 년간 임직원 1000여 명의 이름을 무단 차용해 세이부 철도의 주식을 위장분산했다. 상위 10대 주주의 지분 합계가 80%를 넘는 기업은 상장이 취소되는 규정을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지분율을 낮추기 위해 내부자 거래로 7000만주를 서둘러 매각한 사실도 발각됐다.

일본에선 쓰쓰미 회장의 몰락이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지난 1월 물러난 에비사와 가쓰지 NHK 회장 ▶프로야구계를 떡 주무르듯 하다 팬.선수들의 반발로 물러난 와타나베 쓰네오 전 요미우리 구단주의 퇴진과 함께 시대 변화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 쓰쓰미 전 회장은

쓰쓰미 전 회장은

◆ 1934년 쓰쓰미 야스지로 전 중의원 의장의 3남으로 출생

◆ 1957년 세이부그룹 고쿠도게이카쿠의 대표이사로 취임

◆ 1987년부터 4년간 세계 최고 부호로 선정(포춘지), 자산 210억 달러

◆ 세이부 철도.이즈하코네 철도 사장, 세이부 라인온스 구단주 역임

◆ 일본 올림픽 위원회위원장, 스키연맹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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