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금융위기 피해, 동유럽에 집중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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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카지노 자본주의
한스베르너 진 지음
이헌대 옮김, 에코피아
454쪽, 2만원

2007년 헝가리 경제가 휘청거렸다. 경상수지 적자폭이 국내총생산(GDP)의 6.8%에 이르렀고 재정적자도 GDP의 5%나 됐다. 이듬해엔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Forint)의 가치가 폭락했다. 그러자 화폐가치가 떨어진 만큼 헝가리 경제에 숨통이 트일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자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커졌기 때문에 수출이 활성화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외채가 너무 많았다. 당시 총 대출의 31%, 총 가계대출의 무려 60% 이상이 스위스프랑으로 꾼 것이었다. 환율 탓에 갑자기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니 기업들의 대차대조표는 엉망이 됐다. 결국 헝가리 기업 상당수가 상환불능 상태에 빠졌고 GDP도 곤두박질쳤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토리다. 1990년대 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진 외환위기 상황의 판박이인 것이다. 당시 은행들이 저금리로 달러표시 대출을 들여와 국내 통화로 고금리 대출을 한 것, 그러다 달러가치가 오르면서 외채 총액이 확 늘었던 것, 결국 수많은 은행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고 심각한 경기침체가 왔던 것 모두가 그대로 재연됐다. 왜 동유럽이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였는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독일 뮌헨대 교수인 저자는 이처럼 이번 경제위기가 유럽 각국에서 어떻게 전개됐는지 유럽인의 시각에서 상세히 풀어냈다. 위기의 해법에 있어서도 기존 미국 정부가 취한 방식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제너럴모터스(GM) 등 붕괴 직전의 기업을 억지로 살린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일자리를 지키겠다며 쏟아부은 수백억 달러를 다른 유망한 산업 분야에 투자했다면 더 큰 효과를 냈을 거란 주장이다. 취약한 기업은 위기에서 퇴출돼, 신규 기업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데 이런 당연한 시장논리조차 무시됐다고 했다.

 세계경제가 일단 “최악은 지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더블딥(double-dip:이중침체)’의 우려는 남아 있다. 그 시발점으론 외채가 많은 동유럽, 재정적자가 심각한 ‘PIGS’(포루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이 거론된다. 과연 더블딥이 올 것인지, 그렇다면 어디서 시작될지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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