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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상어지느러미와 옥수수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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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만찬에는 상어지느러미 찜도 나왔는데 반쯤 자른 코코넛에 담겼다. 상어지느러미야 웬만한 중국요릿집에 다 있다. 그리고 소미어는 귀빈을 위한 진미(眞味)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날의 만찬은 여러 나라에서 흔한 국빈용이다.

그러나 장소가 북한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많은 이가 굶어 죽고, 국민 대부분이 쌀밥을 못 먹는 나라라면 얘기는 다르다. 세상에서 먹는 것만큼 실존(實存)적인 문제요 증거는 없다. 권력자와 국민이 비슷한 걸 먹으면 민주 사회다. 그러나 먹는 게 크게 다르면 독재요 반(反)문명이다. 북한은 집권층, 중간집권층, 그리고 일반 주민의 입에 들어가는 게 다른 대표적인 독재 사회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배급제는 차별적이다. 당 간부와 군대·군수공장, 평양 중심부 시민 같은 체제 기반세력에게는 쌀 70%, 잡곡 30%다. 반면 지방 주민은 쌀이 10%고 나머지는 잡곡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그 10%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 같은 날에만 쌀을 받는데 그것도 대부분 오래 묵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반 주민은 주로 옥수수나 감자를 먹는다. 옥수수는 쌀알처럼 잘게 부숴 끓이거나 아니면 밀가루처럼 빻아 죽·떡·국수로 먹는다.

남한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 평상시에 주로 쌀을 먹는 ‘집권 기반계층’에게만 간다고 한다. 대신 옥수수나 밀을 보내면 ‘쌀 먹는 계층’이 별로 반기질 않아 대부분 ‘옥수수 먹는 계층’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북한의 지배계층을 살 찌우려면 쌀을 주라. 그게 아니라 정말로 굶주린 동포를 도우려면 옥수수나 밀을 주라”고 말한다(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탈북자 김태산씨는 평양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경공업성에서 인민 생활물자의 조달·생산·배급을 기획했다. 며칠 전 그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박관용·원장 김석우) 세미나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정일 정권만 교체되면 북한은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북한이 손을 잡고 북한을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쌀을 주면 북한 정권의 벼랑끝 전술만 돕는 게 됩니다. 인민이 먹지도 못합니다. 쌀은 정권이 교체된 후 북한이 어려울 때 주어야 합니다. 쌀 1만t씩 싣고 북한 항구마다 배를 대놓고 북한더러 쌀을 받으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인민이 무서워서라도 북한은 쌀을 받을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중국에 기대지 않아도 됩니다.”

북한에 쌀을 주는 문제는 인간과 사회의 실존에 대한 대표적인 고뇌다. 어려운 이를 돕는 건 당연한 데다, 하물며 동포라면 더 말할 게 없다. 더군다나 지원이 대화로 연결되고 그것이 북한 정권의 생각을 바꿀 수만 있다면 쌀이 변화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증언과 북한의 행태로 보면 회의적인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쌀의 통일·외교학’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 국민을 도우려면 탈북자들의 얘기대로 옥수수나 밀을 주는 건 어떨까. 그리고 만약에 수백t이라도 쌀을 주게 되면 그 쌀이 정말 군대나 군수공장이 아니라 인민의 입으로 들어가는 걸 검증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동안 남한은 막대한 쌀과 달러를 주었지만 돌아온 건 핵과 미사일과 천안함이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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