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행복호르몬의 원동력 '웃음'이 혈압 낮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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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얼마전 나를 찾은 김 불만씨는 들어올때부터 심각한 표정이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혈압과 까닭모를 피곤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는데 증상의 근저에는 과로와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항상 불만스러운듯한 표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살펴본 그의 이마 가운데에는 내 천(川)자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항상 인상쓸일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었다. 그는 면담 중 한번도 미소를 띠지 않았는데 자신과 회사에 대한 불만이 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불만상태는 그의 교감신경항진으로 인한 혈압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바쁜 한국인은 엔도르핀이 결핍될 가능성도 높다. 엔도르핀은 마약인 몰핀과 달리 스스로의 감정컨트롤만으로도 체내에서 생성된다. 그렇다고 엔도르핀이 과잉분비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사실 엔도르핀 분비가 무한정 일어나는 신체란 없다. 부족한 엔도르핀을 채워 균형을 이루면 충분하다.

엔도르핀 촉진은 의도나 계획적 실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사실 인간의 뇌에 이미 설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 거울뉴런이나 이타심의 기제는 인간의 진화하며 얻은 축복 가운데 하나이다. 특별히 사악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타인과 공감하고픈 열망을 갖고 있다. 누구나 마음밭에 타인에의 열정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 열정을 끄집어낼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편향된 삶이 문제일 따름이다. 내 안의 타인에 대한 따뜻한 열정을 찾아내고 숨김없이 표현하는 능동성을 함양하기 바란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배제나 까다로운 선별작업으로는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증오와 미움의 대상으로 삼고, 한 두 사람에게만 열정을 표현하고 쏟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삶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일이다. 정신 건강을 되레 해치는 일이다. 누구라도 조건 없이 포용하기 바란다. 다만 조금 더 많이 좋아하고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김 불만씨에게 웃기처방을 내렸다.

하나, 하루 30번 박장대소하기는 만보 걷기만큼이나 심장병을 예방한다. 아드레날린 과잉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교감신경계는 늘 불이 켜진 상태다. 이렇게 교감신경계의 불을 늘 켜놓으면 어떤 자극에도 반응이 느린 무딘 몸이 되고,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웃음은 교감신경계의 반대편인 부교감신경을 자극한다. 부교감신경이 자극되면 자연스럽게 교감신경은 불을 끄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 혈압이 낮아지고 긴장을 이완시켜 심장병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 이 두 신경계의 균형을 이루는 최적의 수단이 웃음이다.

둘, 웃음은 그 자체로 멋진 운동이다. 박장대소를 하면 몸 전체 근육 650개중 231개가 효과적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맥박수와 심박출량이 증가된다. 어떤 이는 이런 웃음의 효과를 빗대어 몸 안의 조깅(Internal Jogging)이라고까지 예찬한다.

셋, 웃음은 심리치료사이다. 웃음은 즉각적으로 행복감과 긍정감을 고양시키며 걱정, 불안, 우울감을 줄인다. 웃음이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도파민 등의 행복호르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넷, 웃음은 숙면을 돕는다. 웃음은 생각을 멈추게 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숙면할 수 있는 심리적 상황을 만든다. 웃는 동안 지금까지의 생각들은 일시에 끊어진다. 웃음은 즐거운 생각을 이끌어내고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 단 이를 위해서는 웃음 뒤에 또다시 걱정의 칼을 꺼내 들지 않도록 생각중지훈련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다섯, 웃음은 내 안의 면역증강제이다. 웃으면 스트레스호르몬이 감소하고 항암이나 항바이러스 능력이 뛰어난 몸속 NK, T세포가 활성화되어 면역력은 높이고, 각종 통증은 덜어준다.

우선 웃기가 거북한 그에게 진료실에서 열 번 웃기를 처방했는데 처음에 머뭇거리던 그도 내가 웃자, 따라 웃기시작하였다. 일소일소(一笑一少)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진다'란 말이 그에게는 일소일락(一笑一落) '한번 웃으면 1mmHg씩 혈압이 떨어진다'로 적용될 것이라 기대한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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