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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어답터’ 조승연의 프로스포츠 대망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2호 14면

조승연

남자프로농구 삼성의 안준호(54) 감독은 인기 있는 지도자다. 특히 농구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취재원이다.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그의 사자성어는 심심찮게 지면을 수놓으며 회자된다. 교병필패(驕兵必敗)·수사불패(雖死不敗)·성동격서(聲東擊西)·유구무언(有口無言)·기사회생(起死回生) 등이 그가 지난 시즌 구사한 사자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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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4일까지 일본의 나고야와 오사카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전지훈련을 동행 취재한 한 일간지에 안 감독과의 대담기사가 실렸다. 시작부터 ‘사이후이(死而後已)’라는 사자성어가 터져 나왔다. 사이후이란 제갈량이 위나라 침공을 앞두고 한 말이다. ‘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둔다’는 말이니 우승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겠다는 뜻이리라. 참으로 결연하지 않은가. 일간지 사진 속의 안 감독은 웃고 있지만.

프로 경기의 지도자는 선수 못잖게 언론에 노출되는 자리에 있다. 특징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한다면, 그것도 장점이다. 안 감독의 사자성어 실력은 놀랍다. 미리 준비해 두는 것 같기도 하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조승연(66) 단장이 아닐까? 조 단장은 안 감독 이상으로 유연하게 언론을 상대하는 농구인이니까. 1995년 3월 2일자 중앙일보 38면을 보자.

“‘남자농구가 매운탕이라면 여자농구는 프랑스 요리다’. 삼성생명의 조승연 총감독이 남자농구와 여자농구의 차이를 요약한 말이다. 거친 흐름, 스피드, 힘을 앞세운 남자농구는 관중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 박력이 묘미. 반면 여자농구는 오밀조밀하게 이뤄지는 부드럽고 섬세한 플레이가 매력이다”.

매운탕과 프랑스 요리. 이렇게 간결한 비교를 달리 찾기 어렵다. 압축된 묘사는 충분한 관찰과 사고를 통해 숙성한다. 조 단장(당시에는 여자팀의 총감독)은 말에 통찰력을 담았다. 사실 그는 몸보다 먼저 ‘머리’로 농구를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고 조득준(전 고려대 감독) 선생의 아들로, 대학에 가서야 농구선수가 됐다. 농구를 하기 전에 농구에 대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조 단장은 새로운 정보나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경험해 보려 애쓴다. 최근엔 스마트폰을 손에 넣고 그 활용법을 익혔다. 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읽고 일정도 관리한다. 트위터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일본에서 훈련장을 오갈 때는 게임을 했다고 한다(사진). ‘그 나이에 대단하다’싶지만 조 단장의 생각은 더 놀랍다.

“이런 기계들이 세상을 바꿀 게 틀림없어요. 사람들의 생활도 바꾸겠지. 이 트위터나 블로그 같은 거…, 참 이상하죠? 아이들은 이런 데서 아주 먼 데 있는 낯선 사람과도 대화를 하죠. 그런데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는 아무 말도 안 한단 말이에요?”
참으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 단장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농구 같은 스포츠의 책임이 막중해요. 우리가 잘해야죠. 어쩌면 경기장이 사람들이 소통하는 마지막 공간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곁에 앉은 친구와 손을 마주치고 얼싸안고 소리를 지를 곳이 이제 경기장밖에 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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