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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안네 일기' 60년 만에 햇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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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페트르 긴츠가 그린 "달 풍경" 그림. 2003년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에 탄 이스라엘 우주비행사 일란 라몬 대령이 그림 복사본을 갖고 갔다.콜럼비아호는 귀환 도중 폭발,라몬 대령은 숨졌다.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16세로 생을 마감한 유대인 소년의 일기가 60여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28일 보도했다. 제2의 '안네의 일기'다. 주인공은 체코 프라하에 살던 페트르 긴츠. 긴츠의 일기는 시.단편 소설.그림 등을 담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일상생활을 섬세하게 통찰하고 있다. 일기의 첫 장인 1941년 9월 19일자는 "안개가 끼었다.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사인이 보내진 것이다"란 문구로 시작한다. 또 "학교 가는 길에 보안관을 세며 갔다. 69명이나 됐다"며 "그 사람들은 별을 달고 있었다"고 적었다. 별은 유대인이 달고 다니도록 나치가 강요한 표식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보안관'으로 불렸다. 일기에는 유대인의 고난을 길게 풀어놓은 시도 있다. 유대인에 대한 각종 규칙과 금지사항이 늘고 있던 상황에 대해 '담이 없는 게토(격리 거주지역)'라고 묘사했다. 긴츠는 44년 9월 28일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러고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들어가 숨졌다.

현재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여동생 샤바 프레스버거는 "오빠는 지독한 독서광으로, 민감한 내용을 적기 위해 자신만 아는 비밀 알파벳을 만들어 낼 정도로 똑똑했다"고 말했다. 또 "이미 14세의 나이에 8권의 소설과 수많은 단편을 썼다"고 밝혔다. 긴츠는 유대인 집단 수용소의 소년들이 발행하던 '바뎀'('우리는 앞서가고 있다'란 뜻) 신문의 중추역할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하면서다. 이스라엘 최초의 우주비행사 일란 라몬 대령은 컬럼비아호에 탑승하면서 소년의 그림 '달풍경' 복사본을 갖고 갔다. 라몬 대령의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다.

그래서 우주여행을 함께할 소지품으로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보관돼 있던 그림을 선택했다. 우주선은 지구로 귀환하는 도중 폭발해 라몬 대령은 숨졌다. 긴츠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프라하의 한 가정집 다락에서 누가 쓴 것인지도 모른 채 60년간 잠자고 있던 그의 일기장이 빛을 보게 됐다. 일기에는 죽기 직전 2년간의 삶이 기록돼 있다.

여동생은 "일기장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오빠가 묘사해 놓은 모든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기는 '오빠의 일기'란 제목으로 체코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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