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김정일, 덩샤오핑에게 후계신고 … 이번엔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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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선출된 김정일 당시 조선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83년 6월 베이징을 방문해 덩샤오핑을 만나고 있다. 북한의 후계자가 중국 최고지도자와 신고식을 겸해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사진 출처=중국 세계지식출판사가 2009년 10월 발간한 ‘중조 수교 60주년 사진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급 인사가 5월에 이어 3개월 만에 27일 다시 회동한 것으로 이날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의 후계구도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지도부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으며 어떤 태도를 표시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한 대북 소식통은 “허를 찌르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후계 체제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지지를 받아내려는 목적이 가장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그간 중국은 다른 나라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외교 원칙이라고 공개적으로 강조해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북한의 요구에 어떤 미묘한 태도 변화를 보였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澤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혁명 1세대’는 한국전쟁을 통해 혈맹관계를 구축하면서 서로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우의를 과시했었다. 마오가 숨진 뒤에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가 된 김정일을 3년 뒤인 83년 6월 베이징에서 직접 면담했었다. 당시 만남은 중국 최고 지도부에 대한 ‘후계자 신고식’의 의미였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후 김정일이 덩을 수정주의자로 비판한 발언이 전해져 덩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중국은 공식적으로 김정일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친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한 3남 김정은을 중국 최고 지도부에 소개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그러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위시한 현 중국 지도부가 27년 전처럼 통 크게 북한의 3대 후계자를 띄워줄지는 미지수다. 후 국가주석부터 북·중 관계를 ‘정상적인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로 규정하면서 전통적 혈맹이라는 특수관계를 부각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지도부가 북측에 전달했을 메시지는 중국 외교부가 그동안 공개해온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외교부는 그간 여러 차례 공식 기자회견 등을 통해 북한의 후계 구도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입장을 밝혀 왔다. 6월 초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발탁될 당시 김정은의 섭정왕(攝政王)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당시 친강(秦剛) 대변인은 “북한의 내정이라 논평하지 않겠다”고 답했었다. 앞서 2월에도 ‘지난해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에 반대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강조하며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었다.

이 같은 상황 등을 토대로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학 차이젠(蔡建) 한국·북한연구센터 부주임은 “북한은 권력 승계 문제를 놓고 중국의 찬성과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후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중국 측에 전달해야 한다고 느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친중(親中) 노선을 버리지 않는다면 중국이 북한의 세습을 대놓고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해 공개적인 지지 선언은 부담스러워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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