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보다 독립심을 배워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8면

결혼 초 사글셋방이 너무 좁아 갓난애를 가운데 누이고 부부가 양쪽에서 모로 누워 잤다. 지금도 습관이 되어 모로 눕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사업 초기에 현장소장 차를 먼저 사주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러자 명색이 선박회사 사장인데 승용차도 없이 10평 짜리 아파트에서 산다며 이웃에서 위장간첩으로 의심하는 일도 있었다.

나는 검약이 몸에 배어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에게도 구두를 닦거나 청소를 해야 용돈을 주었고, 대학생인 장남도 일요일에 나를 골프장에 데려다 주면 1만원을 주는 식이었다.

세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냈는데, 생활비의 대부분을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도록 하고 모자라는 1백∼2백달러 정도만 보냈다. 주유소에서 심야에만 일하는 장남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밤에는 손님이 적어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둘째는 피자 배달을 했는데 경영학과 학생답게 급료 외에 팁 수입이 많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막내는 장학금을 받아 박사학위까지 땄기 때문에 학비가 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너무 야박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와서 보면 잘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을 한 뒤에도 아버지 사업에는 눈도 안 돌리고 각자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아이들을 해외에 유학 보낸 가장 큰 이유는 공부보다도 독립심을 길러주자는 생각에서였다. 아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재산이나 기업의 경영권보다 독립심이라는 믿음에서다. 독립심이 없는 재산은 언젠가 날아가게 마련이고, 물려받는 기업도 유지하기 힘들다. 현재 장남은 대학교수고, 막내는 샐러리맨이며, 둘째 아들은 자기 사업에 성공했다.

장남이 대학에 다닐 때 내 친구가 "공부 잘 해서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야지"라고 하자 "그것은 아버지 사업인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사업은 아버지 일이고, 저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작은 사업을 하는 둘째에게 "만약 내 사업에 관심이 있다면 주식시장에서 우리 회사 주식을 과반수 매입하라"고 했더니 "아버지, 왜 배 회사 주식을 삽니까? 돈이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업종의 주식이 많은데요"라고 대답했다. 보기 좋게 딱지를 맞은 꼴이다. 내심 제대로 키웠구나 하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형제가 여럿이 한 솥에서 밥을 먹으면 밥그릇 싸움을 하게 마련이다. 결혼해서 며느리가 들어오면 은연중에 싸움은 더 커진다. 가족의 화목은 깨지고 형제간 우애도 사라진다. 기업의 대물림은 가족 불행의 씨앗이다. 자식은 자식의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