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집시 추방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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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랑민 축출이 시작됐다. 프랑스 정부는 19일(현지시간) 루마니아 출신 ‘로마(집시)’ 79명을 본국으로 추방했다. 프랑스는 이달 말까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 온 로마 약 700명을 되돌려 보낼 계획이다. 로마는 유엔 등의 국제기구에서 쓰는 집시에 대한 공식 호칭이다.

프랑스는 이날 성인 300유로(약 45만원), 어린이 100 유로의 생계 지원금을 주고 이들을 항공기에 실어 내보냈다. 정부 관리는 “본인들의 의사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동의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테오도르 바콘스키 루마니아 외무장관은 전날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반하는 조치”라고 이를 비판했다.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최근 3주 동안 51개의 로마 집단 거주지를 폐쇄하고 불법 체류자들을 체포했다. 프랑스에는 40만∼50만 명의 로마가 살고 있으며, 그중 1만5000∼2만 명이 거주 허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유랑민 추방은 지난달 중순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시의 폭력시위에서 비롯됐다. 카지노에서 강도 행각을 벌인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던 로마 한 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자 로마 수십 명이 경찰서를 습격했고, 이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불법 체류 로마에 대한 단속을 지시했다. 로마 추방은 프랑스 내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야당인 사회당과 지식인들은 “외국인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것이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한 의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박해와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12일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는 사안”이라고 프랑스 정부에 경고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공공안전을 위한 합법적 조치”라고 반박했다. 프랑스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 이상이 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마는 9세기부터 인도 북부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유랑 민족으로 산스크리트어 계열의 고유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1940년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로 대거 이동했다. ‘집시’에는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과 다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에서는 주로 이들이 ‘순례자’라는 의미로 스스로를 일컫는 로마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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