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커드 미사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로켓 분야 선구자들 가운데는 어린시절 공상과학소설을 읽고 감명받은 이들이 유난히 많다. 현대적인 로켓의 시조인 V-2를 개발한 베르너 폰 브라운(독일)은 쥘 베른의 『달세계 여행』과 H G 웰스의 『달세계 최초의 인간』을 탐독했다. 브라운의 스승인 헤르만 오베르트 역시 베른의 『지구로부터 달까지』를 읽었다고 한다. '미국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허칭스 고다드가 다섯살 되던 해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책은 웰스의 『우주전쟁』이었다.

로켓이나 미사일이나 기본구조는 같지만 미사일은 탄두(彈頭)를 장착한 무기란 점이 다르다. 초기 미사일 개발 경쟁에서 독일이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군비를 제한당했기 때문이었다(1919년 베르사유 조약). 승전국들은 독일군 병력을 9백만명에서 10만명으로 줄였고 공군은 아예 폐지했으며, 27㎞ 이상의 사거리를 가진 대포도 금지했다. 그러나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허점을 이용해 당시 걸음마 단계이던 로켓과학을 응용한 탄도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 등 유럽 각 도시에 4천3백여기가 발사돼 런던에서만 2천5백여명의 사망자를 낸 V-2 미사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은 소련군보다 한발 앞서 브라운 등 독일 과학자 1백80여명과 V-2 미사일 부품을 자국에 빼돌렸다. 소련도 질세라 46년 10월에 2백여명의 독일인 로켓기술자들을 데려가 미사일 연구에 투입했다.

미·소 간 미사일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소련은 나치독일이 43년에 개발했던 '바서팔(Wasserfall·폭포)'이라는 이름의 로켓을 개량해 훗날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스커드 A' 미사일을 탄생시켰다.

북한 화물선이 스커드 미사일을 예멘에 '배달'하러 가던 중 스페인·미군에 일시 나포됐다가 풀려났다고 한다. 미국으로서는 대단히 멋쩍게 됐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의기양양해 할 일도 아니다. 스커드 미사일을 개량하느라 골머리를 싸매는 북한 과학자 중에도 어린시절 베른이나 웰스의 소설을 읽고 우주여행을 꿈꾸었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소동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jaik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