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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정환·유광렬·이중각 재조명 :잡지 '신청년' 민족운동과 '호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소파(小波)방정환(方定煥·1899∼1931)은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이자 아동문학가로만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발견된 최초의 문예동인지 '신청년'(1919년 1월 19일 창간)의 편집과 재정에 방정환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음이 확인됐다. (본지 12월 5일자 1면과 20면 참조)

이 잡지에서 방정환은 '소파','잔물','SP생(生)'이란 필명으로 여러 작품을 게재한다. 창간호에 소설 『금시계(金時計)』, 시 '암야(闇夜)', 편지투의 수필 『동경 K형에게』를 발표했다. 2호에는 '학생소설'이라 이름붙인 『졸업의 일(日)』, '연애소설'이라 이름붙인 『사랑의 무덤』을 실었고, 제3호에는 『불쌍한 생활』이란 수필을 싣고 있다.

방정환이 창간호에 실은 시의 제목이 '암야'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암야'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란 뜻으로 '절망적인 처지나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시의 말미에 적힌 '1918년 11월 9일'의 시점에서 청년 방정환으로 하여금 '암야'라는 시를 쓰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들 자체에 대한 평가도 뒤따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 잡지와 관련된 당시 방정환의 행적이다. 천도교 지도자였던 의암 손병희의 사위가 된 후 방정환은 비밀 결사단체이자 '신청년'의 주관단체인 '경성청년구락부'를 결성했고, 이어 '신청년'을 주도적으로 창간했다.

방정환과 함께 '신청년'제 1∼3호를 주도한 인물은 유광렬과 이중각이다. '종석(鍾石)'이란 필명으로 유광렬은 '신청년'제2호에 소설 『병원』을, 제3호에는 『숨은 죄』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매일신보 기자로 일하기도 했던 유광렬은 자신의 회고록 『기자 반세기』(서문당·1969)에서 "경성 청년구락부가 18,9세의 소년들로 이루어진 '지하 비밀결사'이며, 3·1운동 전에 회원수가 2백명이나 되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한기형(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국문학)교수는 "유광렬의 술회처럼 방정환의 경성 청년구락부 활동은 향후 있게 될 민족해방운동의 역량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3·1운동의 준비과정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는데 '신청년'과 경성 청년구락부에 대한 연구를 통해 3·1운동에 많은 단체들이 사전에 관련된 보다 진지한 준비과정이 있었음도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만해 한용운이 '신청년'의 창간사를 썼다는 점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용운에게서 창간사를 받아온 사람이 '신청년'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이중각(李重珏)이다. 이중각은 '일해(一海)'라는 필명으로 창간호에 '나는 나니라'라는 시 한 편을 실었다. 이 시 말미에 이중각은 단기(檀紀)년호를 사용해 '4251년 11월 10일'(1918년 11월 10일)이라 적으면서 자신의 사회적 문제의식과 주체적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중각의 고향은 충북 청주다. 『청주시지(淸州市誌)』(청주시 발행,1997)에 따르면 이중각은 1895년 태어나 1923년에 사망했다. 1918년 청년구락부를 조직하고 기관지 '신청년'을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했고, 1921년 '신조선(新朝鮮)'의 기자로 일하면서 3·1운동 1주년 기념시위를 추진하다 체포당했으며, 1923년엔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다 다시 체포됐다. 이때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되었으며,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청주시지』는 적고 있다.

한편 이중각의 행적에 대해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임경석 교수는 새로운 자료를 제시했다.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코민테른 즉 국제공산당 비밀문서에 1922년 10월 11일 결성된 서울파공산주의그룹(고려공산동맹)의 15명 활동가 가운데 이중각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한기형 교수는 "경성 청년구락부에서 의열단, 그리고 공산당 비밀당원, 고문, 자살로 이어지는 이중각의 인생행로는 '신청년'과 관련된 인물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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