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 안 팔리고 인원 2배로 … 위기의 한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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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서울 강남의 한 한의원은 지난해 9월 6년 만에 문을 닫았다. 간호조무사 두 명의 월급과 부가세·이자·임대료 등으로 매달 1500만원을 지출하고 A원장이 400만가량을 가져갔다. 하지만 진료 수입은 이 선을 밑도는 때가 많았고 원장이 가져가는 돈을 줄였다. 그래도 적자가 쌓였다. A원장은 “노인환자가 정형외과에서 두세 가지 물리치료를 받으면 1500원이면 된다. 한의원에서 침 놔주고 뜸·부항 떠주고 6000~7000원을 받는데 환자들이 비싸다고 발길을 돌린다”며 “하루 환자 20명으로는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하늘땅한의원은 접수대 옆에 ‘검증된 약재를 사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홍보물을 설치했다. 대부분의 한의원이 한약재에 중금속이 들어있을지 모른다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보약 매출은 살아나지 않는다. [조용철 기자]

한의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보약 수요가 급감하는 데다 독점권을 인정받던 침이나 뜸 시술마저 위협받고 있다. 10년 만에 한의사들이 약 두 배가 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9일 침·뜸 시술을 한의사에게만 허용한 의료법 규정이 헌법재판소에서 가까스로 합헌 결정(본지 7월 30일자 1, 16면)이 나온 뒤 연일 불법 의료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한의사들이 침에 매달리는 이유는 보약의 퇴조 때문이다. 2002년 무렵부터 홍삼·오메가3·글루코사민 등의 건강기능식품이 보약 시장을 파고들었고 지금은 압도하고 있다. 비아그라를 비롯한 성기능 개선 약품도 보약을 잠식했다.

경기도 광주시 인보한의원에는 4~5년 전만 하더라도 봄이나 가을철에 녹용이 든 어린이용 보약을 지으려는 부모들이 줄을 이었다. 하루에 40첩 이상 처방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하루에 한두 첩 짓기도 힘들다. 이 병원 오수석 원장은 “어린이용 홍삼이 인기를 끌면서 보약 수요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보약 급감의 또 다른 이유는 한약재 불신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카드뮴·납 등 한약재의 중금속 허용 기준이 2005년 대폭 강화되고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약재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보약 수요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주부 이모(46)씨는 “검증 안 된 일부 중국산 한약재가 사용된다는 소문이 있어 보약 짓기가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침에 매달리면서 한의원 매출의 70~80%가 침에서 나온다.

내부 경쟁도 점점 심해진다. 매년 850명의 한의사가 쏟아져 나온다. 2000년 8845명이던 한의사가 올 6월 1만6038명으로 81% 증가했다. 의사(48%)보다 증가 폭이 가파르다. 폐업한 한의원도 2002년 한 해 503곳에서 지난해 727곳으로 늘었다. 면허를 갓 딴 한의사들은 월급 200만원을 받고 한의원 부원장으로 취직하는데 이마저 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정곤 회장은 “정부가 한약재 안전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한의사들이 힘들어졌다”며 “한의학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지금은 전체 지출의 3.9%) 확대 등의 제도적인 지원이 따르면 국민 건강 증진과 국부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이주연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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