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8분짜리 동영상 통째로 유출 … 궁중 암투 보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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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강인 경찰청 차장은 16일 “G20 정상회의 등 여러 치안상황을 앞둔 상황에서 조직이 사분오열로 비치는 사례가 없도록 다 함께 노력해달라”고 밝혔다. 경찰청 내부통신망에 올린 ‘조현오 서울청장 발언의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다.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지난 3월 실시했던 내부 강연의 발언 내용이 외부로 공개된 배경에 ‘경찰청장 자리를 노린 권력 암투가 있다’는 소문을 의식한 내용이었다.

모 차장은 조 후보자가 지난 3월 31일 서울경찰청 강연에서 한 천안함 유족 관련 발언과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발언의 정확한 내용과 해명을 첨부파일에 담았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에서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모 차장이 이 같은 글을 올린 것은 조 후보자 발언 파문으로 경찰 내부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방증이다.

◆의도적인 자료 유출=조 후보자의 발언 파문 이후 경찰 내부에서는 각종 음모설이 나오고 있다. “조 후보자가 치안 총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흠집을 내고 있다” “경찰대 출신과 비(非)경찰대 출신의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 간부들 앞에서만 강연을 하고 5개의 CD로 제작된 1시간8분 분량의 화면이 언론사에 통째로 넘겨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궁중 암투를 다룬 사극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국민들에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더구나 문제의 동영상은 서울경찰청이 직접 촬영한 게 아니고 기동단에서 교육용으로 찍어 일부에만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서울청도 문제의 동영상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서 경찰 내부에선 “누군가 의도적으로 CD를 유출하지 않았다면 언론이 확보하기 힘든 영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예전에도 후보들 사이에 서로 음해하는 일들이 왕왕 있었지만 내부 감찰에 흘리거나 청와대 등 윗선에 찔러 넣는 정도였는데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의 다른 고위 관계자도 “조 후보자의 발언을 비난한 민주당 박지원 대표도 ‘조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더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문제의 동영상이 유출된 시점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3월 말에 했던 강연이 조 청장이 경찰청장 후보자로 확정된 직후 유포됐기 때문이다.

강인식·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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