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손톱깎이 천안으로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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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전세계 사람의 열명 가운데 여덟명은 손톱을 깎을 때 한국제 손톱깎이를 사용한다. 그것들은 모두 충남 천안시에 있는 두 업체에서 만들어진다. 천안이 손톱깎이 제조의 '메카'가 돼 있는 셈이다.

천안시 두정동 천안 제1공단에 자리잡은 벨금속공업(사장 李喜平·59)과 천안 삼거리에 있는 (주)쓰리쎄븐(사장 金炯奎·67)이 그 주역들이다.

두 회사가 한해 생산하는 손톱깎이는 줄잡아 1억5천만개가 넘는다. 생산량의 95%가 5대양 6대주의 90여개국으로 수출된다. 지난해 두 회사의 수출금액을 합치면 5천2백만 달러(약 6백30억원)에 달했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각각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이 회사들은 주장했다. 천안에서 손톱깎이가 처음 제작된 것은 1954년 김형서(金炯瑞·74)씨가 벨금속공업을 창업하면서부터다. 강철 자재를 구할수 없어 드럼통을 조각내 연마기로 일일이 갈아 만들었다. 당시엔 제품 수준이 형편 없어 손톱이 쥐가 뜯어 먹은 것처럼 깎였다. 밀수로 들어온 일본·미국제 손톱깎이가 판치던 시절이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품질 좋은 철판이 생산되고 손톱깎이의 생명인 날의 열처리·연마기술이 향상되면서 점차 국내 시장에서 외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김형서 사장과 동업을 하던 친동생 형규씨가 75년 벨금속공업에서 독립해 쓰리쎄븐의 전신인 대성금속공업(지난해 회사명 변경)을 세웠다.

그 후 두 회사는 서로 기술력·신제품·해외시장 개척 등 모든 면에서 팽팽한 경쟁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형제 간의 우애관계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선 두 회사 간의 선의의 경쟁이 세계 최고의 품질과 시장 점유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김형서 사장은 92년 회사 지분을 현재의 이희평 사장에게 넘기고 손톱깎이 제조에서 손을 뗐다. 李사장은 71년 벨금속 관리실장으로 입사해 자재관리·생산·품질관리·판매 등 주요 부서를 모두 거치고 사장이 됐다.

"한눈 팔지 않고 한 우물만 열심히 판 것이 세계 최고를 이루게 했다. 그 덕분에 외환위기 중의 어려움도 넘길 수 있었다."

金·李사장은 모두 자신의 회사가 기술·생산량에서 "세계 제일"이라고 주장한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렵다. 매출액에서 쓰리쎄븐이 조금 앞선 정도다. 산업자원부도 한 업종에서 한 회사 제품 선정이 원칙인 '세계일류상품'에 올해 두 회사 손톱깎이를 모두 뽑았다. 천안시청 관계자는 "두 회사가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만큼 사업상의 협력이 더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李사장은 "손가락만한 손톱깎이지만 30개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며 "프레스·금형·도금·열처리 등 모든 공정에 세계 최고의 기술 노하우가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는 특허·실용신안·의장특허가 1백개가 넘는다. 'BELL'(벨 금속), '777'(쓰리쎄븐) 브랜드는 해외 10여개국에 상표 등록돼 있다.

4년 전 쓰리쎄븐이 미국에 상표 등록하던 때 세계적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와의 상표 분쟁은 화젯거리였다. 보잉사가 자신의 점보 항공기 시리즈 명인 '737''747' 등 처음과 끝이 7인 세자리 수를 모두 미리 상표 등록해 놓아 등록 신청이 반려된 것. 그러나 86년부터 '777' 상표로 미국 수출을 해왔던 쓰리쎄븐이 '선(先)사용 우선주의' 규정을 내세운 끝에 보잉사와 공동 사용키로 최종 합의했다.

벨금속은 지난해부터 손톱깎이의 대명사로 통했던 미국 바세트(BASSETT)사의 트림(TRIM)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바세트사는 아예 미국 현지 공장의 문을 닫았다. 까다로운 도금 공정까지 완전 자동화에 성공한 한국 손톱깎이의 기술력을 인정한 것이다.

쓰리쎄븐도 월마트와 세계적 화장품 회사인 레브론에 납품하고 있다. 두 회사 제품 모두에 생산지 'korea'가 선명히 찍혀 나간다.

동남아·중남미에선 이들 두 회사 제품의 모조품이 범람하고 있다. 천안 손톱깎이가 브랜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천안=조한필 기자

chop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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